'홍준표’ 뼛속까지 서민?...“광주 검사시절 최고급 아파트 살았다”

[인터뷰] 모래시계 조폭두목 주인공 ‘여운환’ 23년 만에 재심 신청이유는 (中)

백은종 | 입력 : 2017/12/19 [14:46]

[취재= 서울의소리 백은종 이명수 기자 / 신문고뉴스 추광규 기자] 94년도 인기 드라마  ‘모래시계’의 조직 폭력배 두목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여운환(64)씨가 자신의 무죄를 가려달라며 23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다. 여운환 씨는 지난 5일 광주고법에 1994년경 징역형이 확정된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혐의’에 대해 재심 개시를 결정 해달라는 소를 제기한 것.

 

여운환 씨는 당시 수사검사였던 현 자유한국당 대표 홍준표가 사건을 조작해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에 대해 홍준표 측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주장이라는 입장이다. 당시 수사가 무엇이 문제였기에 억울함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취재팀이 여운환 씨를 만나 그 사연을 들어보았다. 인터뷰는 총 3회에 걸쳐 게재된다. 홍준표가 반론으로 인터뷰를 원한다면 그 또한 다룰 예정이다. 한편 인터뷰는 지난 10월 8일 이루어졌지만 재심 신청 이후 보도를 전제로 하는 엠바고가 걸렸던 관계로 지금 공개한다.[기자 주]   

 

▲  드라마 모래시계 이미지 캡처  

 

“홍준표 검사는 한 술 더 떠서 내가 구금되어 있는 동안 나를 찾아온 사람들을 조폭 비호세력으로 몰아갔다. 심지어 나로서는 얼굴도 한번 본 적 없는 한화갑 전 국회의원이 나를 면회 와서는 ‘동지, 조금만 참으시오’라고 말했다는 근거 없는 소문까지 흘리고 다녔다. 홍준표 검사가 그런 식으로 없는 사실을 지어 내면서까지 언론에 흘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생략) 이처럼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도록 만든 뒤에 가장 달콤한 열매를 수확한 당사자는 바로 홍준표 검사 자신이었다. 온갖 외압과 협박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거물급 깡패 두목을 처단하는 검사. 홍준표! 모래시계 검사의 전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모래시계에 갇힌 시간 中 여운환 著)

 

洪, 개업 하지도 않은 호텔 오락실 운영했다고 기소

 

-홍준표 검사의 공소사실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어떻게 나왔나?

“폭력 범죄단체 국제PJ파 두목이고 호남 최대 폭력조직의 두목이라고 기소했다. 말도 안 되는 공소장을 써서 기소하면서 증거를 냈지만 전부 다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두목임을 증명하기는 부족하다면서도 '증거들을 종합하여 보면 위 피고인들이 1986년 말경 국제PJ파에 자금책 및 두목의 고문급 간부로서 위 단체를 구성한 사실은 인정할 수 있다'고 해서 형을 준 것 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86년 말경 국제PJ파 자금책이라는 부분을 보면 1984년경 김00의 주도로 국제PJ파가 조직되어 그가 위 단체를 총괄 지휘하였으며 (나는)조직의 유지 자금을 제공하는 대신 내가 경영하는 호텔 오락실을 보호해 줬다면서 유죄로 인정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 호텔오락실을 91년도에 했다. 그러니까 공소장에 보면 7년 전 84년 경인데 그 호텔은 생기지도 않았다. 내가 알기에 그 호텔은 90년인가 89년 인가에 생겼다. 그러니까 호텔하고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데도 엉터리 공소장을 해놓은 거다.

 

그렇게 하고 활동 무대로 충장로 1, 2가라고 딱 못을 박았다. 여기가 굉장히 번화한 곳이다. 국제다방과 피제이 음악 감상실이 있는 곳이다. 나하고 관련이 돼 있다는 국제호텔은 여기서부터 한 5~6km 떨어져 있는 곳이다. 지방에서 5, 6km는 굉장히 먼 곳이다. 5, 6km 떨어져 있는데, 거기는 뭐 폭력배 없습니까? 보호 받으려면 내가 거기 폭력배한테 보호 받지 왜 쩌그서 올라오는 데 시간 걸리는 놈들한테 받겠는가?”

 

-그 당시 엉터리 판결을 한 판사 이름과 현재 뭘 하고 있는지 말해 달라

"당시 1심 부장판사는 이일빈이다. 지금 수원에서 변호사를 하는 걸로 안다."

 

▲     © 인터넷


-호텔 오락실을 얼마나 운영을 했는가?

"국제호텔 오락실은 91년경 1년 6개월 했다. 회장하고 50대 50으로 지분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호텔에 김훈0이라는 국제PJ파 조직원이 근무를 했다. 그 사람은 호텔 생기기전 건축할 때부터 있었던 사람이고 사장과 인척 관계가 되는 사람이다.

 

나는 백제호텔 관광호텔도 하고 있었고 스치로폼 제조업체인 00산업도 있었다. 내가 그런 회사를 몇 군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지니스를 한 것이다.

 

호텔 주인이 오락실 직영으로 하는 경우도 있고 호텔 주인으로부터 세를 얻어 갖고 하는 사람도 있다. 폭력배 알 수도 있고 용돈 줄 수도 있고 하는 거 아니냐? (하지만)슬롯머신 주인이 조직하고 관계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홍준표가 난리를 쳐 갖고 관광업계를 완전히 어렵게 만들어 놨다. 슬롯머신이 설치돼 있는 관광호텔이 무지하게 많았다. 지방에는 관광호텔이라는 관광 자만 붙이면 슬롯머신 허가가 났었다.”

 

-홍준표와 맺어진 연으로 인해서 인생의 역경을 겪고 있잖아요. 옆에서 보신 인간성을 말씀 좀 해주세요

“홍준표 씨가 어려웠던 시절들을 이야기 하면서 뼛속까지도 서민 같이 이야기를 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왜? 91년도 그때 사회 분위기나 공직사회 분위기는 재산이 훨씬 많아도 상관보다 더 좋은 차를 못 탈 때였다. 그렇게 윗사람들 눈치를 보는 것이 당시 공직사회의 예의였다.

 

검사들도 골프를 굉장히 자제할 때고 잘 못 할 때였다. 당시 검사장 외에는 관사가 없었다. 관사라고는 검찰청에서 얻어 가지고 부장급 정도는 이십 몇 평 정도로 식구가 이사를 오기 전에는 그런 식이었다. 그런데 홍준표 씨는 광주에서 가장 큰 아파트 55평 짜리에서 살았다. 그때 55평짜리 아파트면 지금 100평도 넘는 집이라고 생각을 하면 된다.”

 

-그 정도 월급이 됐나? 검사 월급이?

“그건 모른다. 월급 같은 것은 모르지만 검사가 눈치들을 볼 때라 처갓집이 부자라고 해도 그때 당시 분위기는 좀 아니었다. 그런데 홍준표 씨는 그런 집에서.. 말하자면 위에 사람 눈치 보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자기가 살면 사는 것이제 그런 생각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때 그 집 주인하고 같이 골프를 왔다. 그 사람이 내과를 한 사람인데 집을 싸게 줬던지 그냥 살라고 줬던지... 내가 봐서는 그런 집에서 살기가 쉽지 않고 또 그런 데서 살려고 하면 살림살이도 있어야 할 것이고 생활비도 작은 집보다는 더 들 것이다.”

 

▲ 여운환 씨     © 추광규

 

홍준표 검사에게 불리한 증언...강력계 형사 엉뚱한 곳으로 전출돼

 

-홍준표 검사가 심문을 직접 하고 재판 과정에서도 겪었는데 인권 의식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홍준표 검사가 재판을 시작하면서 증인들을 몇 사람 내세웠다. 그 증인들 가운데 광주에서 굉장히 유명한 콜롬보 형사 같은 경찰관 반장이 있었다. 그 사람이 아마 첫 증인으로 나왔을 거다. 김00씨라고 나하고 아주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알기는 한다. 그 사람이 첫 증인으로 나왔는데 홍 검사가 물었다.

 

‘증인, 뒤를 보라. 피고인 알죠? 여운환 피고인’

‘압니다’

 

‘여운환 피고인, 조폭 맞지요?’

‘검사님. 다시 한 번만 말씀해 주십시오’

 

‘예? 아니 저기 여운환 피고인이 폭력배가 맞냐고?’

‘폭력배 아닙니다!’

 

‘그럼 뭐요?’

‘저희들은 사업 하는 사람으로 파악을 하고 있고. 어렸을 때 폭력배로 분류가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 한 번으로 끝나버렸다. 자기가 내세운 경찰관이 나와서 그렇게 해버렸으니 그 다음날 여운환은 두목이 아니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나왔다. 그런데 그 경찰관을 며칠 있다가 보안부서로 발령 내버렸다.”  

 

-홍준표가 제 1야당 대표로서 대권에도 출마하고 했는데 정치적인 지도자가 되려면 부도덕하지 않고 정의로워야 하잖아요. 젊은 시절에 광주에서 검사를 하면서 정의로움을 본적이 있는가?

“저는 홍준표에게 관심도 없었다. 나중에 그 사람에 대해 들으니까 자기 부장은 ‘검사’고 자기가 ‘부장’이라 할 정도로 행세를 하는 것만 봐도 그렇고 나한테 부장하고의 관계를 이간질 하는 걸로 봐서는 심성이 바르지는 않구나 하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또 나중에 철저하게 모래시계 검사라고 홍보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잘 아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가증스럽게 거짓말을 하고 있고 나쁜 짓을 하는구나 하는 걸 잘 알 수 있다. 모래시계 검사는 무슨 얼어 죽을 모래시계 검사!”

 

-모래시계를 쓴 송지나라는 작가가 모래시계 검사는 홍준표가 아니었다고 인터뷰를 한 게 있었다. 그렇다면 홍준표가 자기 자신을 선전하기 위해서 모래시계 검사를 훔쳐다가 쓴 건가?

“모래시계 드라마는 교도소에 있어서 못 봤다. 송지나 씨도 보다 보다 못해서 그랬을 것 같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대선 때 못 쓴거 아닙니까? 송지나 작가가 말하기 전부터 조작된 것이라고 내가 부정을 했다. 홍준표씨는 내 발언이 본인 명예를 심하게 훼손한 것이었다 하면 날 가만히 두면 안 될 것이다.”  

 

-홍준표 검사에게 조사를 받으면서 인간성에 대해 느끼신 것은 어떤 점인지?

“내가 자기 방에서 프랑스를 간다고 분명히 이야기를 했고, 내가 돌아오는 날짜까지도 이야기를 했다. 내사의 표적이 되어 가지고 조사를 하고 있다고 하면 나를 못나가게 해야죠? 출국 금지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내가 들어와서 사전 구속영장을 받은 그날 출국 금지 했다. 이거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다.”  

 

-홍준표 검사가 자기 출세를 위해서 여운환씨를 타깃으로 만들어서 희생양으로 쓴 뒤 출세를 했다는 건가?

“아니다. 그건 단정할 수는 없다. 저는 별것이 아니다. 지방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일 뿐, 나 같은 사람을 타깃으로 삼아 출세의 기회로 삼았다고 보지 않는다. 어떻게 하다 보니 그림이 그려진 거다. 내가 장담 컨데 그 사람은 사감으로 시작했다.”  

 

-그럼 처음에 서로 인사를 하네 안하네 하는 문제를 시작으로 그 칼 세트가 홍준표씨 아내도 비싼 선물이라는 걸 알고 좋아했는데 잘못 가져다 줬다고 다시 가져가니까 이게 누구 물 먹이나 하면서 괘씸죄로 여운환 씨를 엮어 넣으려고 조폭 두목으로 만들었는가?

“조폭 두목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 사람한테 명분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제가 여죄가 있었다면 조폭 두목이라고도 안하고 그것부터 (수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털어도 안 나오니까 날 갑자기 조폭 두목으로 만든 것 아니냐?

 

국제PJ파의 두목으로 김00이 이미 지목이 되어 2심까지 받았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탄원서를  썼다고 (여운환을)두목으로 기소를 한 것이다. 같은 또래 친구도 아니고 현00이란 사람이 2년 후배인데 나하고 공동 두목이라고....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전부 다 소설이다?

“그렇다”

 

▲SBS 드라마 모래시계 이미지 캡처     

 

국제PJ파 두목은 김00....허위진술 했다고 증언

 

-원래는 김00씨가 두목이 맞는가요?

“지금도 경찰에서는 그 사람이 두목이라고 리스트에 올라가 있고 관리를 해오고 있다.”

 

-김00이라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지?

“내가 강력부장하고 가깝게 지냈다는 것은 광주 사람들이 다 아는 일이다. 김00은 재판 10일 남겨 놓고 탄원서 하나 쓴다고 나한테 무슨 피해가 있다고 생각을 했겠냐! 김00이 증인으로 소환이 됐는데 못나왔다. 그러니까 전주 교도소까지 재판부가 가서 증언을 들었다. (김00이) 다 말했다. 감형을 위해서 허위진술을 했다고.”

 

-지금 이 인터뷰 하는 이유가 억울하다는 건데 왜 억울한지 이걸 요약해서 말을 해달라.

“재판은 공소사실을 가지고 재판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공소사실이 다 무죄가 나왔다. 공소사실은 알리바이하고는 전혀 안 맞는 사실을 제기 한 것이다. 홍준표가 내사를 하니까 내가 자기를 위협하기 위해서 부엌칼을 보내서 협박했다고 했다. 그 부엌칼 내놔봐라. 증거는 하나도 없고 내놓은 것도 없다.

 

뭐 칼을 갖고 어쩌고 해보려고? 나중에 재판 받을 때 알고는 그거 내 놓아 보라고 그러니까 못 내놓았다. 그 당시 홍준표는 공인 아닙니까? 홍준표 이야기를 믿지 내 이야기를 믿겠습니까? 그러면 증거로 말해야지! 폭력배 두목이 칼을 보냈다. 그러면 그것만 해도 뉴스다.”

 

-그동안 이런 억울함을 묻고 지내다가 이걸 밝히겠다며 나온 거는 어떤 이유인가?

정권이 교체된 영향 때문인가? “지금까지 안 밝힌 것이 아니다. 홍준표 씨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을 하고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언론에도 이야기를 했다. 인권위원회에도 제소를 하고 여러 가지 채널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다는 아니어도 했었다.”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제목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