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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 김어준의 예언에 대해서...

남영주 기자 | 기사입력 2018/02/26 [01:50]

[기자의눈] 김어준의 예언에 대해서...

남영주 기자 | 입력 : 2018/02/26 [01:50]


나는 김어준의 뉴스공장를 들으며 블랙하우스를 보고 그가 말하는 진보적 가치에 프레임과 프레임에 뉴스의 흐름을 읽는 매의 눈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는 진영논리라는 프레임을 해석한 나머지 진보, 보수라는 프레임에 갇혀있다. 성폭력 문제는 좌우진영논리에 해석될 것이아니라, 인권의 문제이다. 이건 예언이 아니라 지시다.


물론, 미투운동에 평소 성폭력 사건에 관심도 해결할 생각, 법안마련에 대해 노력도 없었던 야당 국회의원들과, 보수언론, 야당측 인사들이 분열과 반목의 기회로 삼아 문재인 정부의 성폭력 대응이 안일하다 공격할 것이고 댓글부대들은 짜맞춘듯 공격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걱정하는 것을 이해한다. 그런 자들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왜 그런 말들이 나오는지 피해자들의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지에대해 실망을 느낀 피해자들에 대한 마음이 빠졌다.


그도 어쩔 수 없는 권력에 존재하는 남자. 삼성과 이명박에 대해 집중하고 고군분투하는 그의 노력이 곡해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어딜가나 성폭력 피해자로 쉼없이 살아왔던 여기 한인생으로써는 그저 속이 쓰리다.

 

그가 우려하는 예언은 관심이다. 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좋은 현상이다. 배가 많아 사공으로 가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는 바람이 돛을 꺾어 이상한 곳으로 가길 원한다해도 배는 그대로 나아가지 이상한 곳으로 도착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배안에 있는 사람들은 바람과 파도에 맞써 버티고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직접 공포를 겪어내며 견뎌내는 피해자들이다. 언론인은 성폭력 피해자들이 더이상 다치지 않길 바라며 삶의 투쟁을 응원해야한다, 비바람, 궂은날씨 파도를 걱정하고 경고하며 어둠속에 빛이, 배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등대가 되어주어야 한다.


얼마나 억눌려있던가. 한평생 성폭력 피해자로 살았던 나의 어머니는 나에게 일을 한다는 것이 어떤의미인지 두려우면서도 시도하길 원했다고 한다. 직접 부딪히고 몸소 경험하면서 엄마가 겪은 아픔이 무엇이였는지 느끼고 우리 세대가 바꾸길 바랬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가 바꾸지 못해 미안하다고, 너에게 이런 참혹한 현실을 겪게 하라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1세대 2세대 3세대 이제 나의 세대조차 성폭력에 무기력한 세월을 지나 이제서야 변화를 일으키려는 태풍속에서 홀로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나홀로 버티는 줄 알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함께 버티고 견디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 아픔을 어디가서 말 못하고 숨겨가며 말이다.

 

가장 무서운건 무엇인가. 바로 무관심이다, 이명박 구속을 바라지 않는 사람보다 바라는 사람이 훨씬 많다. 매일매일 기사에서 관심은 좋은 방향이던 나쁜 방향이던 있다는 관심이 있다는 사실은 좋다는 것이다.

 

언론에서 문단내,연극내,방송계, 종교계 성폭력 사건에 집중하며 미투운동의 바람에 동참한다. 사회조직을 바라본다. 단체를 바라본다. 그러나 아무 조직도 단체도 노조활동도 없는 개인, 비정규직이나, 알바생, 노동자들 눈에는 사실 그들만의 리그같다. 동참하고 싶어도 이름없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저 직장을 포기하거나 견뎌가며 법이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법망이 촘촘하지 못해 그물 사이로 빠져나가는데, 처벌이 미약한데, 가해자는 징계에 그치고 다시 사회적 재기를 하는데, 게다가 사회적 시선은 피해자의 행실과 도덕성을 문제삼아 냉혹한데, 결국 사직서를 내고 직장을 관두고 옮겨다니다 지쳐서 무직으로 사는데, 사회적 최약자, 밑바닥, 권력도 힘도 존재하지않은 언더그라운드의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내주지 않는다. 언론인이라면 관심있는 분야만 파는게 아닙니다. 음지에서 양지로 관심을 끌어올렸다면, 해결할때까지 끝까지 추적하는 것도 좋지만, 진짜 무관심해서 버려진 사람들을 주목해주어야 한다.

 

정말 배부른 소리를 하고있어요. 관심이 우려된다고요..

저는 밤에 잠을 못잠니다.
가해자들은 두다리 뻣고 잠을 청하며 저에게 행한 성폭력을 하나의 추억거리로 삼겠지만, 그러나 나는 그를 고소하고 감옥에 넣지 못해 제2피해자,제3피해자가 생길까 전전긍긍하며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라는 생각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나는 비겁하다. 

그의 말뿐인 사과를 받는데 만족해서 되는가,
그는 사회로 나갈 수 있는 짐승인가, 인간인가,
사회에 존재해야 하는가,
그는 누군가 함께 일할 수 있는 존재인가, 
내가 그의 인생과 영업을 망치는가, 
내가 피해자를 양산하는가.


나의 인생은 망가졌는데 수많은 고민과 갈등에 내가 책임감을 지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그는 가해자라는 의미를 벗어나 새로운 직원들을 상대할텐데 나는 그 직원들에게 어떤 가해를 할까 조마조마하며 내탓이라고, 아무 힘도 권력도 능력도 없는 내탓이라고 자신을 저주하며 살아간다

 

참회한다 진심으로 반성하고 미안하다는데 정말 진짜일까, 믿어주는 내가 그에게 범행의 기회를 준 것 같아 속이 쓰리다.

 

사람들은 죄책감 갖지말라며 그가 믿어준 사람을 배신하고 또한번 범행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그의 탓이지 네탓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달라지지가 않는다, 나약한, 무기력의 하소연이다, 내가 비겁하다, 밧줄에 묶여있다.

 

부디, 언론은 들어주어야 합니다. 하루하루 살얼음판에 낭떨어지에 서있는 지금도 도움이 필요한 피해자들은 대기업 뿐만아닌 중소기업체에서도 공장에서도 개인 사업체에서 성폭력을 겪으며 살아가고 피해를 호소해도 주목하거나 들어주지 않아요.


그들의 삶은 보호받지 못한다는 걸 잘알기에 그저 부러워 합니다.

뉴스에 나오는 미투운동을 말입니다. 사회적 관심을 말입니다.
언론마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나고 침묵하지만 
그럼에도 언론인의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 합니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글까요.

 

"침묵을 강요하던 '강간 문화'는 끝났다" 문화계를 포함한 각계 원로들...m.pressian.com

 

"페미니즘은 진보/보수의 문제가 아니고, 여성들에 대한 폭력의 문화는 어느 진영에나 다 있었다. 진보인사이든, 보수인사이든, 그들은 권력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어떤 이는 돈을 끌어모으는데 사용했고, 어떤 이는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데 사용했다. 이 중 어떤 것이 더 문제가 있고 덜 문제가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자신들이 판단하기에 '악한 사람'이 권력을 휘두르는 방식은 나쁘고, '선한 사람'이 권력을 휘두르는 방식은 나쁘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낡은 프레임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경향신문>의 만평처럼 '미투'가 일종의 물타기라고 보는 것도 마찬가지로 낡은 프레임이다."(권김현영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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