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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주년 제헌절에 ‘정의’를 생각하다

정의란 ‘자유·평등, 권리·의무’의 실천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것이다

권혁시 칼럼 | 기사입력 2018/07/18 [14:26]

70주년 제헌절에 ‘정의’를 생각하다

정의란 ‘자유·평등, 권리·의무’의 실천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것이다

권혁시 칼럼 | 입력 : 2018/07/18 [14:26]

 

‘정의’(正義, justice)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바른 도리’ (동아출판사, ‘새국어사전’), ‘사회나 공동체를 위한 옳고 바른 도리’, ‘바른 의의’, ‘플라톤의 철학에서, 지혜와 용기와 절제의 완전한 조화를 이르는 말’ (포털 다음, ‘어학사전’) 등이다. 그런데 근자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마이클 샌델이 한 권의 책으로 쓴 정의론은 전혀 새로울 것도 없이 너무 장황하다는 느낌이다. 그러면 한마디로 말해서 (샌델의 책 제목처럼) “정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요컨대, 도덕적 인간본성, 곧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기 위해 실천하는 ‘자유·평등, 권리·의무’이다.


이렇게 요약한 역사적인 정의란 근대 이후에 그 중요성이 강렬하고 극명히 인식된 도덕적 가치이며 ‘평등’이 핵심이다. 인류역사 이래 가장 타당한 논거로 인정되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규명한 정의의 본질 또한 평등이며 ‘평균적 정의’와 ‘일반적 정의’, ‘배분적 정의’로 구분하였다. 오늘날에는 특히, 정치·사법 분야에서 보다 강력하고 실질적이며 구체적으로 적용, 준행되는 평균적 정의는 어떤 차별도 없이 모든 사람이 동등하게 대우 받는 불변의 가치를 이른다.

 

정의실현을 위해 분투한 역사적 산물 ‘헌법’(憲法)

시민주권·천부인권·권력분립론 확립

 

이에 따라 정의의 의미는 ‘각 개인에게 그의 몫을 되찾아 주기 위한 영속적인 의지’(울피아누스), ‘정당화가 불가한 불평등이 없는 상태의 추구’(존 롤스)와 같은 보다 적극적이고 확대지향적인 인식론으로 발전하였다. 서두에서 정의에 관하여 도덕적 가치, 곧 인간본성으로서 ‘인간의 존엄성’을 언급하였거니와, 인간세의 역사야말로 존귀한 인간존재의 숭고한 가치의 구현과 향상을 위해서 끊임없는 분발과 분투로 일관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인류 최초의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발현시키고 이에 대한 지속적인 가치 창조의 방편으로써 ‘자유’의지를 인식하였고, 인류의 자유를 위한 분투는 지금도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가 무한정일 수 없다는 인식, 즉 의무 없는 자유 ㅡ 그 권리는 정의의 훼손,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방종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리며, 따라서 권리의 존중과 동시에 의무의 준수가 필연이라는 철칙을 세우기에 이른다.


이렇게 의식 향상으로써 정당한 인간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시작되었고 1215년,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Magna Carta, 대헌장)는 사상최초로 문서 작성에 의해 선언된 권리장전인 것이다. 여기에 표명한 ‘민권사상’은 1628년, 권리청원(Petition of Right)과 1689년, 권리장전(Bill of Right)에 의해 그 근본이념이 중단 없이 계승, 발전하였다. 그 후 1776년, 아메리카(미국) 버지니아 주의 권리선언(The Virginia Bill of Right·16개 조, 조지 메이슨 기초)은 민권사상에 관한 ‘정의의 권리’가 뚜렷하게 천명되는 시발이었다.


ㅡ 제 2조,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귀속되며 따라서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정부는 국민의 대리인이고 봉사자이며, 항상 국민에게 순명하여야 한다. 제 4조, 어떤 개인이나 특정 집단도 공적 봉사의 이유에서가 아니면 특례적이고 개별적인 이득이나 특권을 누릴 수 없다. 그 이득과 특권은 대물림할 수 없으며 행정관리, 입법관, 재판관의 관직도 세습할 수 없다. 


제 5조, 나라의 입법권·행정권은 사법권에서 분리, 구분되어야 한다. 입법권과 행정권을 행사하는 사람은 (국민을) 억압해서는 안 되며, 국민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거기에 동참하는 심정으로 일정기간 뒤에는 자연인으로 환원되어 원래 속했던 모체로 되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선거는 자주, 반드시 정기적으로 실시해야 하며 전임자들의 전부 또는 일부의 재출마 여부는 법이 정한 바에 따른다.


제 8조, 사형이나 모든 형사 소송의 경우 당사자는 그 고발의 이유와 성격에 관해 (설명을) 요구할 권리, 고발자와 증인을 대면할 권리, 자신에게 유리한 증거를 제시할 권리, 공정무사한 지역 배심원에 의한 신속한 재판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며, 이 배심원이 만장일치로 결의하지 않으면 유죄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 제시를 강요당하지 않으며, 어떤 개인도 국법 또는 동료들의 판단에 의하지 않고는 그의 자유가 박탈되지 않는다. 


제 15조, 어떤 자유, 정부 또는 자유가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축복도 정의·중용·절제·검소·선행 등에 대한 국민의 확고한 의지와 근원적 원리에 대한 빈번한 성찰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ㅡ 이 권리선언의 요지는 ‘국민주권’(민권)을 위시한 ‘통치권’ 등은 정의의 원리, 이를 테면 ‘사회정의’(social justice)에 합당치 않으면 그 본연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점을 명백히 표명한 것이다(시민을 모든 권력의 근원으로 여겨 이에 의한 자유시민의 권리를 주장함으로써 존 로크 를 비롯한 정치사상가들의 시민주권설과 천부인권설, 권력분립론을 현실적으로 규범화하였다).


이러한 퓨리턴(청교도 淸敎徒)의 기본적인 정의감이 미국의 건국이념으로 전승되어 ‘미국 독립선언’을 포고하였다. 그리고 3년 후 1779년, ‘프랑스 인권선언’에 원용되면서 현대의 인권사상, 민주주의 이념의 기초가 되었다(더욱이 근대 민권사상과 이념의 시금석을 이룬 프랑스 인권선언으로부터 민권은 천부불가양(天賦不可讓)의 가치로 확정되기에 이르렀다). 지난한 역사를 관통한 끝에 이루어진 버지니아 권리선언은 특히, 인류역사상 최초의 최고법인 ‘헌법’(constitution, 미국 권리장전)의 모태가 된 점에서 더욱 더 의미심장하다.

 

의식개혁을 통한 ‘사법혁신’, 국헌준수·정의수호의 사명완수 국민명령

ㅡ ‘헌법개정’, 민주시민혁명 성공의 원동력

 

대한글씨검정교육회

권혁시 이사장

이처럼 인류가 ‘정의구현’을 향하여 치열하고 엄정한 역사적 과정을 거치면서 종국적으로 이를 통해 형성한 헌법은 정의를 실현하는, 즉 국가·사회의 가치구현에 관한 의지표명인 동시에 이를 직접적으로 수행하는 최상의 방책이다. 그래서 통치조직(정치체계, regime)과 작용의 기본원리이며 법규범적인 논리체계로 확립된 ‘국가기본법’인 것이다. 하지만 제헌절 70주년에 통분한 심정으로 정의를 말하는 까닭은 대다수 선량한 국민은 사법권이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가 되어주리라 믿었으나, 이를 간단 없이 역행해서이다.


“판사들은 판결로써 말해야 했을 때 침묵하기도 하였으며, 판결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진실에 등돌리기도 했습니다. 사법부는 서로가 고립되어 서로 불신하기도 하였고, 서로 경원하기도 하였으며, 서로 통제하기도 하였습니다” (한인섭, ‘정의의법 양심의법 인권의법’ ㅡ 사법부 개혁에 관한 우리의 의견, 1993년 6월 28일 발표) 


“돌이켜보면 우리 국민은 자신의 기본권을 보장하여 줄 것을 위임한 사법부에 기대어 기본권을 보장받기보다는 오히려 많은 부분을 국민 자신의 희생과 노력으로서 스스로 쟁취하여 왔으며, 이 과정에서 많은 국민들이 사법부를 불신하고 심지어는 매도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한인섭, ‘정의의법 양심의법 인권의법’ ㅡ 새 대법원 구성에 관한 성명, 1988년 6월 16일자 동아일보)


사법부에 대해 수십년 전에 지적, 거론하였던 이런 부조리와 무원칙이 지금도 여전할 뿐 아니라, 경제개발에 매진하던 1970년대 이후부터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하였다. 이 시니컬한 유행어에 반신반의했는데, 이를 기정사실화하고도 남을 놀랍기 이를 데 없는 ‘사법농단’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다. 하지만 아주 최근에도 이에 연루된 판사의 몰지각한 법정발언을 비롯한 갖가지 비리와 도덕적 해이(moral hazard)가 연발하고 있으니 통탄할 노릇이 아닌가. 


현직 판사의 뇌물수수 의혹(폭로), 연수명목의 법원직원 가족여행 등등, 정의와 원칙, 양심에 어긋나는 이런 작태는 국민의 사법부에 대한 실망과 불신, 우려의 극한을 넘게 하고 있다. 기실 국정최고책임자의 헌정질서 파괴, 국정농단에 분개하여 정권전복을 결행했던 민주시민의 심정은, 그 정치권력의 전횡을 저지하기는 커녕 오히려 하수인이길 마다지 않았던 사법농단의 전모를 확인하면서 실망과 우려를 넘어 참담하고 침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도대체 이런 법(justice)이 세상 어디에 있는가!” 절망과 질타가 뒤섞인 국민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듣고 헌법유린의 사법농단을 주모, 주도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일벌백계, 엄중히 처벌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서 사법부의 전 구성원은 뼈저린 반성과 깊은 성찰을 통하여 의식개혁을 실천함과 아울러 철저하게 ‘사법혁신’을 단행함으로써 국헌의 준수와 정의를 수호하는 사법권 본연의 ‘공적사명’을 완수하는 데 진력해야 한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가 개원하였고 7월 17일, 최초의 ‘대한민국 헌법’이 공포되었다. 제헌헌법 제정 당시에도 핫이슈는 지금처럼 정부형태·권력구조였다(초안의 의원내각제는 대통령제를 최상의 진보적 정치시스템으로 신봉한 국회의장 이승만의 강권에 의해 대통령제로 전격 변경되었다). 따라서 70주년 제헌절을 맞은 국회 역시 정의실현, 곧 민주주의의 목적인 ‘자유·평등, 권리·의무’를 실천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구현하는 최고의 기준이며 최상의 방책인 헌법개정에 최선을 다해야 마땅하다.


만일 국회가, 특히 야당들이 지난 6·13지선에서 국민이 준엄하게 응징한 정치파행은 물론, 개헌해태의 과오를 망각하고 또다시 민의의 묵살, ‘국민명령’을 거역한다면, 미구에 분노한 국민이 구태 정치와 수구 정치세력을 일거에 퇴출시킬 것이다. 그래서 간과치 말아야 할 경구는, “비리(부조리)는 원리(원칙)를 이기지 못하고 원리는 법을 이기지 못하고 법은 권력을 이기지 못하며 권력은 하늘(천명, 민의)을 이기지 못한다” (非理法權天 비리법권천)


그러므로 특별히 명심하여 반드시 실행하기를 바라건대, ‘헌법제정권’ 또한 국가 최고 권력인 국민주권이며, 이를 위임 받은 하위 권력이 통치권(입법·행정·사법 3권)인 바, 국회는 ‘국민명령’에 절대 복종하여 민주시민혁명 성공의 원동력이 될 ‘역사적 국헌개정’이 발전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초당적 노력을 기울여 합심협력,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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