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 ‘진보의 역사...박정기 뒤를 따르고 있다’

추광규 기자 | 입력 : 2018/07/29 [23:00]

▲ 2011년 6월 11일_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당시 백기완 선생과 같이 투쟁에 나선 고 박정기 선생. 사진제공 = 채원희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의 부친 박정기(90)씨가 28일 오전 노환으로 별세했다.

 

박씨는 이날 오전 5시 50분께 부산 수영구의 한 요양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장례는 부산 부산진구 시민장례식장에서 4일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31일 엄수될 예정이다.

 

재야 원로 백기완 선생은 박정기 선생을 추모하는 글을 올렸다.

 

백기완 선생은 ‘고 박정기 선생님을 떠올리며’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박정기 선생님, 정말 원통합니다”면서 “아들의 원수를 갚아야 겠다는 우리들의 절실한 요구가 아직도 막연한 이 판에 선생님께서 먼저 떠나시다니 정말 원통합니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선생님, 우리 지금까지 싸워온 발자취를 멈추지 맙시다”면서 “박종철이를 학살한 그 악독한 개망나니 새끼들, 그리고 그들이 아직도 틀어쥐고 있는 이 분단체제, 억압체제를 발칵 뒤집고 박종철 열사를 죽인 놈들을 몽땅 청산할 때까지 선생님, 우리 다함께 눈을 번쩍 뜨고 한 걸음 한 걸음 또 나아갑시다”라고 각오를 말했다.

 

백기완 선생은 계속해서 “여기 있는 백기완이도 이제 얼마 안 남았지만 선생님 뒤를 따르겠습니다”면서 “선생님, 먼저가신 그길 외롭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숱한 민중이 아니 진보의 역사가 뒤를 따르고 있다고 믿으시고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애통한 마음을 표했다.

 

더불어민주당도 논평을 통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김효은 더불어민주당 부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1987년 경찰에 불법 체포돼 고문 사망한 박종철 열사 아버지께서 오랜 투병 끝에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면서 "고문치사 사건은 조작과 은폐를 시도한 군사독재정권에 맞선 6월항쟁으로 이어져 민주화의 문을 활짝 열었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30년 세월 동안 헌법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려는 권력과 자본의 온갖 시도에도 우리 국민들은 피로 만든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면서 "최근 드러난 기무사 계엄 문건 등 민주화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반헌법적·시대착오적 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박종철 열사는 서울대 언어학과에 재학중이던 지난 1987년 1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수배자를 찾던 경찰의 물고문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쓰러졌다”는 기자회견으로 국민적 분노를 자아냈다. 이는 같은 해 6월 항쟁을 이끌어낸 계기가 됐다.


원본 기사 보기:인터넷언론인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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