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인당 국민소득 3만1천달러 상회", 달라진 우리의 일상 문화

국가의 외교적 위상, 교육, 문화, 복지발전을 끌어왔고, 앞으로 더 많은 발전 가능성을 열어 두어

정현숙 | 입력 : 2019/01/22 [09:46]

2만달러 돌파 후 12년 만에 3만달러 돌파

 

국민소득 3만달러 (PG) [제작 정연주] 일러스트

                                                                                    연합뉴스

 

지난해 사상 최초로 수출 6000억 달러를 달성하면서 우리나라의 국민소득이 3만1000달러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돌파한지 12년 만이다.

 

22일 한국은행은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GNI)이 3만1000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박양수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이날 열린 2018년 4ㆍ4분기 및 연간 국내총생산(GDP) 속보치 설명회에서 "지난해 실질 경제성장률과 환율을 감안할때 1인당 GNI 규모는 3만1000달러를 상회한 것으로 현재까지 계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2006년 2만달러 시대에 진입한 이후 10년 이상 3만달러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2017년에 2만9745달러로 3만달러 턱 밑까지 올라서며 3만달러 시대 진입을 예고한 바 있다.

 

전 세계 인구 5000만 명 이상 규모를 가진 국가 중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는 국가는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여섯 나라 뿐이다. 수십 년 전 하루 한 끼를 못 때워 끼니 걱정을 하면서 보릿고개 운운하던 한국이 그야말로 상전벽해가 된 것이다.

 

불과 20여 년 전인 IMF 때와 비교해도 금석지감이 아닐 수가 없다. IMF 사태는 1997년 대통령 선거가 있기 직전 그해 겨울, 우리나라 국민들이 겪은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IMF의 사전적인 의미는 ‘국제통화기금’으로, 1945년 설립된 세계무역의 안정을 위해서 설립된 좋은 취지의 국제기구이다.

 

1997년 말 당시 우리나라에 외환위기가 닥치고 결국 국가 부도, 디폴트라는 충격적인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는 국가 부도에 필요한 돈을 IMF라는 국제통화기금에 요청했고 이것을 IMF 사태라고 불렀다.

 

아직도 대기업 재벌과 소수 기득권에 편중된 소득 격차가 해소되지 않았지만, 작년 11월에는 IMF 금융위기를 소재로 삼은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상영되면서 지난 시절을 반추할 수 있을 만큼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 괄목할만한 성장을 하였다. 

 

일제 강점기 36년 식민지의 아픔과 6.25 전쟁의 고통, 지독한 가난과 독재를 이겨낸 한국은 이제 세계 6위의 수출강국이자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30-50클럽’(국민소득이 3만 달러이면서 인구 5000만 명 이상인 국가)에 가입한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의 위상이 국제적으로 높아지면서 우리의 일상이 문화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아보는 것도 흥미롭지 않을까.

 

지난 추석 시즌, 인천공항을 찾은 해외여행객들이 수속을 밟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사진=이동훈 기자

지난 추석 시즌, 인천공항을 찾은 해외여행객들이 수속을 밟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머니투데이

 

간편한 여권 발급과 자유로운 해외여행

 

해외여행을 위해 여권을 발급받으려면 규격에 맞는 사진과 신분증을 준비해 가까운 구청이나 발급 기관에 가서 편리하고 빠르게 발급받을 수 있다. 굉장히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여권을 발급받는 이유나 목적에 대해 낱낱이 추궁을 받거나 발급을 거절당할 일도 없다. 

 

하지만 1980년대만 해도 일반 국민의 출국이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여권을 발급받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갈 수 있게 된 것은 1989년 여권법 시행령이 개정된 이후다.

 

이와 함께, 경제성장을 거듭하면서 국민소득도 함께 증가해왔고 이에 따라 의식주 이외의 분야에 대한 소비력도 함께 늘어났다. 실제로 해외여행 자유화와 함께 여행을 다녀온 국민들은 해외에서 면세로 여러 물건을 싸게 구입하면서 나갈 때는 가볍고, 들어올 때는 무거운 짐가방이 될 수 밖에 없다.

 

자장면에서 다양한 외식 문화와 학교 도시락이 무상 급식으로 변화

 

70년대까지만 해도 졸업식 기념 외식의 단골 메뉴는 자장면이었다. 외식을 하는 것 자체가 귀한 행사였던 그 시절, 자장면 한 그릇의 행복을 기억하는 이도 분명 많을 것이다. 70년대를 거쳐 80년대로 오면 외식 메뉴의 대표 주자는 ‘경양식 레스토랑’으로 변화한다.

 

근래에 굉장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인 ‘응답하라 1988’에도 80년대 당시 모습이 등장하는데 외식을 위해 한껏 성장하고 차려입은 가족이 경양식집에 방문해 돈가스와 함박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갖은 폼을 잡으며 돈가스를 써는 모습은 요즘 세대에게는 생소하고 재미있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 와서는 가족 단위 패밀리 레스토랑이 외식 메뉴의 1등 주자로 뽑히며 전성기를 자랑했다. 80년대 후반부터 경제 발전과 함께 국민의 삶의 질이 높아졌고, 졸업식과 같은 특별한 날 이외에도 가족 단위로 외식을 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지금은 경양식 레스토랑의 시기를 거쳐 피자와 파스타 등과 같은 다양한 서양의 식사 형태에 익숙해지면서 소비 수준과 입맛에 맞게 외식 메뉴도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 학교급식이 법적으로 제도화된 것은 1981년의 일로 그 전까지는 대부분 도시락을 싸서 학교를 다녔다. 초등학생과 중학생 때는 도시락 하나, 야간자율학습을 하던 고등학생 때는 도시락을 두 개, 세 개씩 싸기도 해 책가방 무게가 장난이 아니었다.

 

현재는 초등학생, 중학생을 대상으로 무상급식이 시행되고 있어서 학부모들의 부담도 많이 줄었다. 도시락에서 유료급식으로, 유료급식에서 다시 무상급식으로 경제가 나날이 발전하면서 학생들의 건강과 입맛에 맞는 식사로 발전하고 있다.

 

좋아진 것은 급식만이 아니다. 우리가 예전에 사용하던 교과서는 크기가 작고 종이의 질이 좋지 않고 얇아 잘 찢어졌는데 요즘 교과서는 과거의 교과서와 비교하면 종이의 질이나 사진의 선명함, 크기 등에서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특히나 잘 부러져 자주 깎아 써야 했던 연필도 아예 깎을 필요 없는 샤프심으로 더욱 편리해졌다.

 

한국은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로 오늘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수출 6천억 달러, 세계 일곱 번째의 ‘30~50클럽’ 가입국이 되었다. 작년 12월에는 영국 싱크탱크 경제경영연구소(CEBR)가 한국은 세계 경제 순위에서 2026년에 10위권에 진입하고, 남북한이 통일되면 2030년에는 영국과 프랑스를 제치고 세계 6위에 오를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경제의 발전은 단순히 금액이나 숫자의 차이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대외적인 국가의 외교적 위상, 소비, 교육, 문화, 복지 등 많은 곳에서 발전을 끌어왔고, 앞으로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와 함께 더 많은 발전 가능성을 열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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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19/01/23 [14:26]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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