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이 받고 있는 세월호 두 가지 핵심의혹 정리!

세월호 수사방해 및 인사보복, 특조위 강제종료 개입 논란 되짚기!

고승은 기자 | 입력 : 2019/05/02 [16:16]
▲ 세월호 사건의 진실을 밝힐 중요한 열쇠인 ‘세월호 7시간’을 국가기록물로 지정, 최대 30년간 열어보지 못하게 한 건 황교안 자한당 대표가 행한 일이다.     © JTBC

[ 서울의소리 고승은 기자 ] “그게 아마 2014년 참사 당시에 7월 달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광주지검이 해경 상대로 한 전담수사팀을 설치를 했고 내부에서 전원 일치로 최소한 123정장에 대해서는 업무상과실치사(이하 업과사)상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 검찰은 만장일치로 그렇게 판단을 했는데 매우 집요하게 아마 법무부라고 추정이 되고 있는데요. 법무부 쪽에서 절대 그것은 안 된다. 업과사라고 하는데 그 업과사를 빼야 한다고 실제로 아주 강한 압박이 있었고. 계속 지시가 왔고, 그래서 최종 현실화가 됩니다. 7월 말에 123정장을 업과사 혐의와 공문서 허위, 이런 쪽으로 해서 긴급체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구속영장을 신청하는데 (업과사)가 빠졌습니다. 업과사가 빠지는 바람에 사실은 기각될 수밖에 없었죠.”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황교안 자한당 대표를 세월호 사건 수사방해 의혹 등과 관련해 조사키로 결정했다.

 

세월호 유가족은 사건 당시 법무부장관을 지내고, 이후에도 총리·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던 황 대표를 조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세월호가 불편한 자한당에선 ‘야당 탄압’ 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특조위의 박병우 국장은 2일 오전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으로 야당에 유력한 주자를 죽이려고 하는 것 아니냐. 부담은 없는가”라는 질문에 “사실 관계를 정리하면 1월 말에 신청 사건이 들어왔고, 그 때는 (황교안 대표가) 대표가 아니었다. 자연인의 신분이었다. 저희들이 딱 3개월 간 검토하고, 그 3개월 째 되는 날이 지난 4월 30일”이라고 반박했다.

 

박 국장은 이어 “모든 국민들이 아시겠지만 세월호 참사라는 것은 304분의 희생자가 공권력이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참사가 벌어진 엄중한 상황을 생각하면 어떤 정치적 고려나 신분이나, 이런 것을 고려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가족들이 어떤 대목을 조사해달라고 의뢰했나“라는 질문에 ”크게 한 가지, 그리고 사후 한 가지“라고 답했다.

▲ 2014년 7월, 세월호 국정조사에서 훼방만 놓았던 심재철·조원진 당시 새누리당 의원들을 꾸짖는 유가족들이 만든 세월호 종이배.     © 고승은

큰 한 대목은 황 대표가 세월호 구조 현장을 지휘한 해경 123정장(김경일)에 대해 업무상 과실 치사 혐의를 빼고 구속 영장을 청구하도록 검찰에 지시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다. 여기에 추가로 인사보복 의혹도 있다.

 

2014년 7월 광주지검이 해경 상대로 전담수사팀 설치하고, 내부 논의를 거쳐 최소한 123정장에게는 구조 실패의 책임을 물어 업무상과실치사(이하 업과사)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으나 법무부 쪽에서 업과사 혐의를 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결국 업과사 혐의가 빠지는 바람에 123정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설명이다. 당시 법무부장관은 황교안 대표였다.

 

박 국장은 “그것이 세간의 의혹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저희들이 지금 주목하고 있는 것은 현직 검찰에 계신 분들, 그리고 꽤 고위직에 계신 분들이 실제로 압박을 받았다, 압력을 받았다고 이미 언론을 통해서나 그런 말씀을 동일하게 하시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사를 안 할 도리는 없다”고 말했다.

 

해당 수사팀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다소 낮아진 2014년 10월 초에야 123정장을 업무상 과실치사로 기소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변찬우 광주지검장 등 광주지검 지휘부와 대검 지휘라인은 이듬해 1월 검찰 정기인사에서 일제히 좌천을 당했다. 이에 황 대표가 당시 법무부장관으로서 ‘인사 보복’을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밖에 사후 한 가지 대목은 세월호 특조위 1기 강제종료(2016년 6월 30일)다. 박병우 국장은 “세월호 특조위가 사실은 강제해산을 당했는데 그것이 법적으로 맞는 행위인지 여부도 사실은 지금 아직 제대로 가려진 적이 없다”고 밝혔다. 당시는 황교안 대표가 총리로 재직하고 있을 시절이다.

▲ 2015년 4월, 세월호 특별법 무력화를 담고 있는 정부시행령에 반발, 단체 삭발식을 진행했던 세월호 유가족들. 이후 안산 분향소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도보행진을 했다.     © 고승은

당시 박근혜 정권은 특조위 구성시기를 특별법이 시행된 2015년 1월 1일이라 주장하면서 2016년 6월 30일을 특조위 활동기간(1년 6개월) 종료 기간이라 그대로 못박은 바 있다.

 

그러나 특조위는 2015년 7월까지 정부로부터 예산 한 푼도 지급받지 못해 약 7개월간 활동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세월호 특별법 무력화를 담고 있는 정부 시행령 강행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조사 대상이었던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이 특조위의 요직을 차지했다. 게다가 예산도 처음 청구한 것에 비해 반토막 났을 정도로 크게 줄어들었다.

 

당시 언론들은 특조위가 ‘활동기간 연장’을 요구하는 것처럼 몰았지만, 실제로는 ‘활동기간 보장’을 요구했던 것이다. 결국 7개월의 활동기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1기 특조위는 강제종료당한 바 있다. 이런 강제종료 사건에 황 대표가 개입했는지 조사한다는 것이다.

 

김어준 총수는 “특조위가 조사만 할 수 있고 강제 수사권이 없는데 조사하겠다고 부른다고 황교안 대표가 오지도 않을 거 아닌가”라고 물었고, 박 국장은 “워낙 법치를 강조하셨던 분이고 지금도 법치를 항상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계시는 분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법적 기구의 적법한 절차에 의한 조사에 응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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