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거 10년

눈물은 누군가를 위한 기도

이기명 칼럼 | 입력 : 2019/05/21 [18:27]
■기레기의 눈물
 
초면에 인사를 하게 됐다.
‘기레기라고 합니다.’
‘기러기요?’
‘아뇨 기레기요.’
‘기 씨라. 희성이군요.’
‘그렇지도 않습니다. 요즘 기레기 많습니다.’
 
꾸며낸 얘기다. 왜 그런 얘기를 꾸며 내느냐고 꾸중을 하면 할 말이 있다. 내겐 기레기에 대한 한이 있다. 얘길 들으면 이해할 것이다. 이미 고인이 된 죽마고우. 후배들에게 존경받는 기자였고 언론사의 간부도 지냈다. 지금도 기레기들의 기사를 보면 그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서거가 있은 지 얼마 후 그와 술 한잔할 기회가 있었다. 술이 얼큰해졌다. 친구가 소주잔을 단숨에 비우더니 날 한동안 쳐다봤다. 고개를 숙였다.
 
“이보게. 노 대통령 서거는 우리 기레기들 탓이네.”
 
안경 밑으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내게는 새삼스러운 얘기가 아니다. 나는 이미 그렇게 판단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역 언론사 간부인 친구로부터 그 같은 얘기를 듣는 것이 조금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두자. 내가 입을 막았다. 함께 얘길 해 봐야 상처만 더 깊어질 뿐이다.

(자료사진 – 신혁 기자)
 
■노무현 죽어
 
상고 출신이 학력 전부인 판사 출신 인권변호사 노무현의 국회 등장은 기자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는가. 노무현 의원은 원진레이온 15세 노동자 문송면 군의 수은중독 사망원인을 파헤쳐 노동 관련 전문 의원이 되었고 재벌은 그를 요주의 인물로 지목했다.
 
어느 날 조선일보 종로지국의 배달 소년들이 노 의원을 찾아왔다. 배달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소년들은 그저 지국에 한 번 들려만 달라고 했다. 노 의원이 지국을 찾아가 지국장과 대화를 나누는데 조선일보 기자로부터 전화가 왔다.
 
‘거긴 뭘 하러 갔느냐. 국회의원이면 정치나 잘하라’는 꾸중의 말씀이다. 노 의원이 받았다. ‘기자면 기사나 잘 써라.’ ‘정치 다 하고 싶으냐?’ ‘맘대로 해 보라.’ 그 후로 노무현 죽인다는 말이 돌았다.
 
그 후 주간조선에 ‘노무현 의원은 상당한 재산가인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우종창이란 기자가 쓴 기사다. 표지에는 노 의원의 내복 바람 그림도 실렸다. 노 의원이 고소했다. 주간조선을 고소했다는 소리를 들은 김영삼은 ‘무슨 정치를 그렇게 하노’ 취하를 종용했지만 듣지 않았다. 그 후 노 의원은 김영삼이 3당 합당을 하고 의원총회를 열어 형식적인 지지를 요구하자 ‘이의 있습니다’며 손을 들고 항의를 해 김영삼을 바보로 만들었다. 노무현은 찍혔다.
 
얼마 후 국회의원 선거가 시작되자 민정당 허삼수는 연단에서 주간조선만 흔들었다. 노 의원은 낙선했다. 그러나 재판에는 승소했다. 조선일보는 노 의원에게 사과했다. 노 의원 관련 기사는 항상 삐딱했다. 보기에 딱해서 한 말씀 드리면 ‘정치 안 하면 그만이죠.’ 간단해서 좋다.
 
청문회 때다. 현대의 정주영이 증인으로 나왔다. 거물 야당 의원들이 증인에게 회장님을 연발했다.
 
그러나 노무현 의원이 질문할 때 정주영은 엉겼다. 임자들 만난 것이다. 정주영은 청문회 후일담에서 노 의원이 가장 무서웠다고 고백했다.
 
정주영뿐이 아니다. 전두환도 그의 경호실장이던 장세동도 근로자의 사망보상금을 아끼던 풍산금속의 유찬우도  자신의 비리가 탈탈 털리는 현장에서 막막하기는 모두 같았다. 회장님 회장님하고 불리는 재벌 회장들이 국회의원을 어떻게 보는가. 의원들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재벌 회장들이 말을 잃게 한 노무현 의원을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이른바 청문회 스타가 됐으나 그럴수록 그의 적은 늘어갔다. 특히 언론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노 의원은 정치인이 가장 겁을 낸다는 언론과의 거리가 멀어졌다. 그런 상황은 바로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의 운명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기레기들에게 노무현은 그냥 똘똘한 정치인으로 남는 그 이상은 필요 없었다. 이리저리 아무리 따져도 자기보다 낫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노무현. 그들이 마지막으로 들이대는 잣대는 ‘잘나 봐야 상고 출신’이다.
 
■당신이 무슨 대통령 출마냐
 
정치인 노무현이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상대는 이회창. 기자들은 웃었을 것이다. 중앙일간지의 고참 기자가 식사 자리에서 대놓고 묻는다. ‘당신이 무슨 대선 출마냐.’ 완전 개 무시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됐다. 조·중·동 기레기들이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자존심은 엉망이 됐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이를 어쩌지. 기레기의 탄식이다. 과연 한국언론의 일류라는 조·중·동은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인정했을까. 더구나 노무현은 당선되자 한겨레를 방문했다. 이를 갈았을 것이다.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다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살아야 할 사저는 노방궁(아방궁의 별칭)이 됐다. 봉하마을에 와서 현장을 본 기레기들은 어디에서 노방궁(아방궁)을 발견했을까. 대통령의 형 노건평이 들고 있는 배드민턴 채는 골프채가 되고 그의 밭은 골프장으로 변한다.
 
그들의 눈에는 퇴임한 전직 대통령이 타는 자전거가 ‘할레이 데이비슨’ 모터사이클로 보이지 않았을까. 비유지만 며느리가 미우면 ‘발꿈치가 달걀처럼 생겨도 흉이 된다’는 격이다. 조·중·동의 영향력이 대단해서 전직 대통령은 천하의 부도덕한 인물로 전락하고 만다.

(자료사진 – 신혁 기자)
 
■개천에서 용 난다
 
노동자의 고혈로 부를 축적하고 호의호식하던 재벌의 총수들이 청문회에서 걸레처럼 망가졌다. 국민들은 그 광경을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박수를 보냈을까. 비난했을까. 국민들이 잘 알 것이다.
 
개천에서 용이 난다고 말이 있다. 그러나 정작 용이 나면 세상은 용을 어떻게 보는가. 노무현이란 정치인은 개천에서 난 용이 아니라 하늘이 낸 용이었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환경에서 공부 많이 한 정치인들이나 또한 머리 좋은 언론인들은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 그들이 생각하는 개천에서 난 용은 결코 자신들보다 우월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당신이 똑똑한 건 알겠는데 나보다 더 인정받는 건 못 참아. 편견이길 바란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처음부터 봤다. 39년 전 5·18 학살 만행 이후 망월동을 처음 찾았을 때 아직 떼도 덮지 않은 붉은 무덤 앞에 벗들과 함께 앉아 통곡하던 생각이 난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39년 전 광주에서 시민들이 계엄군에 의해 학살 당하고 있을 때 국민들은 까맣게 몰랐다. 언론의 보도는 폭도들의 폭동이었다. 그때 광주에 특파되었다는 조선일보의 김대중 사회부 차장의 기사는 살벌했다. 공포였다.
 
“광주시를 서쪽에서 들어가는 폭 40m의 도로에 화정동이라는 이름의 고개가 있다. 그 고개의 내리막길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고 그 동쪽 너머에 '무정부 상태의 光州'가 있다. 쓰러진 전주, 각목, 벽돌 등으로 쳐진 바리케이드 뒤에는 총을 든 난동자들이 서성거리고 있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광주로 통하는 모든 통로가 막힌 상태에서 광주에는 식품과 의약품 등 생필품의 품귀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타지에서 반입되던 생필품이 끊긴 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대부분의 상점과 시장들이 가게를 열었을 때의 안정이 보장받지 않은 상황 때문이기도 하다고 바리케이드 저편에서 온 몇 사람들은 얘기했다.”
 
복면하고 소총을 든 난동자들이 바로 오늘 저기 무덤 속에 누워 있는 민주투사들이다. 15세 안종필 열사다. 언론은 말한다. 그 때 언론도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뿐인가. 학살자들에게 아첨하지는 않았는가. 그들의 기사에는 어디에도 학살은 없었다. 5·18 당시 광주에는 언론이 없었다. 언론 자체가 가짜였다. 광주 기자들의 증언이다.
 
“우리는 보았다. 사람들이 개 끌려가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러나 신문에는 한 줄도 싣지 못했다. 이에 부끄러워 우리는 붓을 놓는다.” 
1980년 5월 20이 전남매일신문 기자 일동.
 
지금은 어떤가. 가슴에 손을 얹어보라. 양심이 떨고 있지 않은가. 기레기들은 무엇으로 기사는 쓰는가.
 
며칠 전 조선일보가 여론조사 관련 인터뷰도 하지 않은 사람을 등장시켰다. 쓸 것이 없어서 그러는가. 그러니 기레기 소리를 듣는다. 어째서 그 모양이냐.
 
이제 세상은 바뀌었는가. 나는 내세를 믿지 않는다. 그러나 바로 이 시간, 광주 망월동 5·18 민주 영령들 앞에서 그들의 죽음을 추모하는 국민들이 눈물을 쏟을 때 바로 이 순간만은 내세의 존재를 갈망한다. 이 모습을 노무현 대통령이 보신다면 아마 대통령님도 국민과 더불어 통곡을 하실 것이다.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신 지 10년이 흘렀다. 올해도 나는 봉하마을에서 하염없이 부엉이바위를 바라볼 것이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대통령을 마지막 뵌 자리에서 말씀하셨다. ‘우리를 모두 못 살게 할 모양입니다.’ 그 말씀을 하시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항상 사람과 가까이하고자 노력했고 약속을 지켰던 노무현 대통령. 의원 시절 여수 인근 단위농협에 강연 약속이 있었다. 서울을 떠날 때부터 몸살로 열이 있었다. 취소하자고 했다. 그들이 얼마나 기다렸겠냐. 가야 한다. 물도 못 마실 정도의 고열 속에 간신히 강연을 마치고 귀경했다. 그리고 앓아 누었다.
 
출판사 노동조합 연수에 강연 초청을 받았다. 촌이었다. 도착하니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놀기에 바빴다. 돌아가자고 했다. ‘놔두세요. 얼마나 놀고 싶었겠습니까.’ 강연을 마치고 늦은 밤길을 운전하고 오면서 대책이 없는 분이라고 투덜댔다. 그것이 사람을 대하는 그의 철학이었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피를 토하듯 추모사를 했다.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습니다.”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이 거리낌 없이 나오는 현실에 광주시민들께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올해 기념식에 꼭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5·18의 진실은 보수·진보로 나뉠 수 없습니다. 광주가 지키고자 했던 가치가 바로 ‘자유’이고 ‘민주주의’였기 때문입니다.”
 
“유신 시대와 5공 시대에 머무는 지체된 정치의식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새로운 시대로 갈 수 없습니다.”
 
“광주의 자부심은 역사의 것이고 대한민국의 것이며 국민 모두의 것입니다.”
 
광주로부터 뿌려진 민주주의의 씨앗을 함께 가꾸고 키워내는 일은 행복한 일이 될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지겹도록 노무현 대통령을 괴롭히던 기레기들. 이제 기레기도 눈물을 흘려야 한다. 좋아하는 시의 구절이 있다. ‘눈물은 누군가를 위한 기도’라는 것이다. 악마가 눈물을 흘려도 그건 기도다. 어떠냐. 5·18 민주항쟁 투사들의 넋을 기리고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며 눈물을 흘릴 기레기는 없느냐.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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