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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사장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재철이, 내가 쪽 팔려서 못 살겠네”

자네를 키운 세력이 이제 “그만두면 우리가 죽이겠다”고 위협하지 않나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2/05/31 [22:30]

MBC사장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재철이, 내가 쪽 팔려서 못 살겠네”

자네를 키운 세력이 이제 “그만두면 우리가 죽이겠다”고 위협하지 않나

서울의소리 | 입력 : 2012/05/31 [22:30]
“자네를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검은 세력이 있음을 아네”
 
   
▲ 강기석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김 사장, 오랜만이네.
최근 광화문광장에서 자네를 MBC 사장자리에서 쫓아내야 한다는 1인시위를 두어번 벌인 적이 있네. 내게 자네에 관해 묻는 전화가 가끔 오더군. 1인시위 때문이 아니야. 자네나 나나 기자생활 30년이 넘은 마당에 마치 남의 말 하는 것 같긴 하지만 기자라는 게 참 그악스럽긴 하데 그려. 자네와 내가 고등학교 동창이란 특별한 인연을 어떻게 알았는지 말야. 아는 대로 이야기해주고 싶긴 하지만 사실 내가 자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은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나.

우리가 고등학교 다닐 때 특별히 가깝게 지낸 바도 없고 졸업한지도 벌써 40년이 넘었지 않나. 언론계에서도 마찬가지였지. 대학 졸업후 내가 (주)문화방송?경향신문에 입사한 것이 77년, 자네가 같은 회사에 입사한 것이 79년, 자네의 언론계 투신이 2년 늦은 것은 나보다 군복무를 2년 더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추측만 할 뿐이네. 아니면 재수를 했던가.

자네는 입사하자마자, 경향신문에서 스포츠기자로 뛰고 있던 나를 몇번 찾아 와 수습생활의 고달픔을 토로하곤 했던 것이 지금 유일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라네. 자넨 수습과정에서 신문이 아닌 방송기자에 더 적성이 있다는 걸 발견하곤 방송을 택했고, 이듬해 80년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인 언론통폐합사태가 벌어졌을 때 (주)문화방송?경향신문이 두 개의 회사로 쪼개진 후 우리는 영 만나질 못했었지.

동창이 참 무심하다고 욕할지 모르겠지만 난 그후 자네의 궤적을 전혀 추적하지 못했었어. 취재하는 분야가 같았으면 아무리 회사가 달라도 가끔 얼굴은 볼 수 있었을텐데 그렇지도 않았고, 88년초 민주화의 바람을 타고 전국의 언론사마다 노동조합이 결성돼 ‘참언론’ 투쟁이 벌어지기 시작할 때도 자네의 모습은 보이지 않더군.

동창이 참 무심하기도 했지

사실 그때 언론운동의 선두에 섰던 건 30대 중후반의 나이에 기자경력 10년 안팎의 ‘우리들’이었고 그건 경향이나 MBC나 마찬가지였지. 나는 그때 초대 노동조합 간부로 나섰다가 이후 해고 두번, 구속 한번의 고초를 겪었었지. 언론노조에 전임으로 있을 때 MBC 노조 파업투쟁에 지원을 나가기도 했지만 자네의 모습은 끝내 보이질 않았어. 그때 우리 인연은 다시 한번 맺어질 수 있었건만 그렇지 못했고, 나는 대신 그때 알게 된 언론계 선후배들과 지금도 광화문에서 번갈아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지. 자네 포함, KBS 김인규, YTN 배석규 등 낙하산 3인방을 몰아내는 것이 방송정상화의 시작이라고 말일세.

자네가 어떻게 MBC 사장으로 가게 됐는지, 많은 해설을 들었지만 그 얘기는 여기서 다시 꺼낼 필요가 없지 않나 싶네. ‘77동기회’라 이름붙이고 가끔씩 MBC와 경향 입사동기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오가는 얘기로는 계열사 사장을 한번 이상 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라고 하더군. 그런데 자네가 파격적으로 울산MBC 사장에서 청주MBC 사장으로 두번씩이나 지방사 사장을 역임하고 드디어 본사 사장으로 영전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난 솔직히 “이 친구가 나도 모르는 엄청난 능력이 있었구나!”라는 감탄보다는 “이 친구 이거 어떻게 하려고 이러지?”하는 걱정이 앞섰다네.

난 오래 전부터 “사람마다 그릇이 다르다”는 ‘그릇론’에 동의하는 편이었다네. 기업사장이나 하면 족할 사람이 대통령을 한답시고 나라를 들어먹는 꼴을 보고는 ‘그릇론’에 동의 정도가 아니라 아예 신봉하게 됐지.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자네라는 그릇은 MBC 사장이란 자리를 담을 만큼 넉넉하지 못하다고 생각했지. 불행히도 그런 내 생각은 틀리지 않았군.
   
▲ 언론 파업 현장. ⓒ 박정원 기자

 자네 그릇이 MBC 사장자리에 맞지 않았던 것 같아

여기서 MBC라는 공영방송의 시대적 역할이 무엇이며 거기에 자네의 세계관이나 언론관이 적합한가 등등의 거대담론을 꺼내지는 않겠네. 자네의 경영방침이나 인사철학, 자네가 추구하는 보도방향 등의 옳고 그름을 논하자는 것도 아니네. 그 모든 것보다 우선 자네는 자기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더군.

법인카드라는 것이 그렇게 만만한게 아니라네. 이곳저곳 피신하는 중에라도 한번쯤 짬을 내 정연주 전 KBS사장의 경우를 공부해보게. 감사원이 파렴치범으로 몰아보려고 법인카드 사용내역을 샅샅이 뒤졌는데도 티끝 하나 부정한 사용사실이 나오지 않았다지 않나. 왜 아니겠나. 휴일에 회사에 나오더라도, 개인적인 일이면 회사차가 아니라 자기 차를 손수 몰고 나올 정도로 철저히 자기관리를 했다고 하지 않나.

아니면 옛날 수습생활의 고달픔을 호소할 때처럼 동창인 내게라도 법인카드 사용법을 물어보지 그랬나. 자네도 알겠지만 나도 경향신문을 그만 두고 정부기관인 신문유통원장을 지낼 때 한달 2백여만원이라는 꽤 많은 액수의 카드를 사용할 수 있었지. 이명박 정권들어 전 정권 사람들 몰아낸다고 각 기관마다 대대적인 감사가 벌어졌었지. 그때 감사요원들이 가장 먼저 뒤진 게 뭔지 아나. 기관장의 법인카드 사용내역이었다네.

내 경우, 2008년 4월인가 5월에 소속 부처 감사요원들 너댓명이 들이 닥쳐 2주 예정으로 뒤지더니 아무 것도 나오지 않자 감사기간을 1주간 더 연장할 정도로까지 시달림을 받았다네. 부임 초기 경험이 많은 부하직원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아무리 귀찮아도 영수증 뒷면에 사용내역을 꼼꼼히 적어 두는 것을 습관화한 것이 결정적으로 도움이 되었지. 그 덕분에 한 5개월 잔명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보다 파렴치범을 면한 것이 고마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네.

자네의 지저분하고도 도를 넘는, 그래서 결국 자네의 인생 자체를 망가뜨리는 단서가 된 카드편력은 자네가 속한 그쪽 사람들에게서 잘못 배운 탓인 게 틀림없어. 이 정권들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별별 지저분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불문가지이지만, 아주 조금 밝혀진 바 그쪽 동네의 어른 최시중이란 양반의 꼼수만 해도 기가 막히지 않던가. 나름 사용한도를 넘기지 않는답시고 쪼개서 ‘시간차 계산’을 했다던가.

도덕성은 그렇다치고, 법인카드 사용법이라도 좀 제대로 배우지

물론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사들도 실수는 저지르지. 내가 지금도 존경하는 언론계 출신의 어느 선배는 한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기도 했고, 또 어느 어른은 마사지클럽 정도도 아닌 호화이용원에 출입하다가 걸리기도 했다네. 또 어떤 후배는 법인카드를 자기가 사는 동네에서 자주 사용한 이유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적도 있지. 나 역시 들키지는 않았지만, 대한민국 평균남성들이 저지르는 비행들을 가끔씩 저질렀고 지금도 그러고 산다네.

문제는 책임이야. 위에 말한 분들은, 그런 사실을 알아서는 안되는 사람, 혹은 기관이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바로 자리를 던져 버렸다네. 그 자리들이 작은 자리였을 거라고 지레 짐작하지는 말게. 적어도 MBC에 버금가는, 혹은 훨씬 중요한 자리들이었다네. 다만 그 자리는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였다는 것만을 알아 두게.

MBC 사장 자리는 도덕성이 필요없는 자리라고 강변하지는 말게. 지금 세상이 온통 ‘양아치논리’가 팽배해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 도덕성을 요구하는 직종의 하나가 언론, 그 중에서도 공영방송 MBC야말로 가장 높은 도덕성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회사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네. 자네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 점에 동의할 것이라고 믿네. 우리가 사춘기 때 함께 다녔던 학교야말로 믿음과 사랑, 정직을 무엇보다 강조한 미션스쿨 아니었나. 그 가르침이 여전히 자네나 나의 무의식 속에 깊이 박혀 있으리라 믿는 것이네.

그러므로 여러 사람들이 자네가 자리에 연연하는 모습을 보고 자네의 욕심과 고집을 탓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네. 자네는 지금 자기 처지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아주 궁박한 처지에 놓여 있음이 틀림없어. 자네를 지금까지 키워왔던 세력이 자네에게 “그만두지 말라. 지금 그만두면 노조가 아니라 우리가 널 죽이겠다”고 위협을 가하고 있다는 말일세. 그 위협에 대한 두려움이 자네를 이렇게까지 비참한 지경에 몰아넣고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네.

   
▲ 언론 파업 현장. ⓒ 박정원 기자

 
자네를 키운 세력이 이제 “그만두면 우리가 죽이겠다”고 위협하지 않나

어느 누구도 자네를 그런 위협에서 구해줄 수가 없네. 자네만이 할 수 있네. 잘못이 있으면 그 죄를 달게 받겠다는 결심을 하게. 언제라고 자네의 잘못이 그대로 덮어지겠나. 더 늦기 전에 지금이라도 저들의 마수에서 벗어나 역사 앞에 서게. 단, 자리에서 내려 오기 전에 후배들에 대한 징계와 조직개편을 포함한 모든 것을 원상태로 돌려놓게. 확신하건대 자네가 일정한 고난을 면할 수는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 순간에만은 후배들로부터 우렁찬 박수를 받을 것이네.

이보게 재철이, 우리가 내일 모레면 어느새 나이 60이 되네. 60이면 이순(耳順)이라 하지 않나. 세상 이치를 저절로 알게 되는 나이라는 말일세.

마지막으로 한번 더 솔직해지고 싶네. 내가 오늘 자네에게 장문의 공개편지까지 써가며 이렇게 주절댄 것은 사실 자네를 위한 것보다 나를 위한다는 의미가 더 크네. 같은 언론인으로서, 같은 고교 동창으로서 정말 쪽팔려서 못 살겠네.
       
 
                                                                          강기석 편집자문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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