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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박근혜는 앞으로 한을 풀러 살아온 사람...

박정희의 '한 맺힌 분을 풀어드려야 한다'며 지지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2/12/16 [10:27]

송해, 박근혜는 앞으로 한을 풀러 살아온 사람...

박정희의 '한 맺힌 분을 풀어드려야 한다'며 지지 

서울의소리 | 입력 : 2012/12/16 [10:27]
송해 "박근혜는 국가 위해, 한 풀려 살아온 사람" 지지

방송인 송해씨가 15일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에 대해
지지선언을 하면서 "조상(박정희)께 바칠 효도의 의미가 있다면,
한 맺힌 분을 풀어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송씨는 이날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 광장에서

"이 세상 지구 상 어디를 돌아봐도 우리 박 후보만큼 불행한 분도 없다.
양친을 흉탄에 잃어버리고 40년 세월을 동행하는 사람 없이
오직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앞으로 한을 풀려 살아온 사람"이라고
박 후보를 소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CBS 윤지나 기자]

 
송해씨... 정신차리세요...

아비의 한을 풀기 위해 나왔다면,,,
김재규 무덤에 가서 풀어야지 왜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가 말이지요...
송해씨 민주사회에 살면서 천수를 누리고 살았다면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경의라도 표하여야 하는 것 아닌가요?
 
정신나갔나요?
놀이터에 놀러만 다니더니 이번 선거가 놀이인줄 아시니요?
과거 이승만 정권하에서 연예인들이 정치깡패들의 노리개로 살아야 했던 시절... 
임화수의 노리개 되어 "눈물의 곡절" 소리를 들어야 했었던 고 김희갑선생...
박정희 술판에 불려다녀야 했던 어린 연예인들...
그들의 고통을 기억한다면 어찌 그런 말을 감히 할수 있단말이요?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을 하였다면 당신은 철면피요...
이걸 모르고 말했다면 보고나서 그 발언을 당장 철회하시요... 
 

유신 독재시절 박정희 여자 200여명!
http://amn.kr/sub_read.html?uid=6669&section=sc1&section2=
 
그중 한분의 사연입니다.
아기있는 신혼 여배우를 성 노리개 삼다 강제 이혼시켜...
 
서울의소리 ㅣ 기사입력  2012/09/18 [23:10]
1960년대 후반까지 영화 두 편에 주연 여배우로 출연, 한국 영화의 톱스타로서 앞날이 촉망되던 미모의 영화배우(서울 명문대 출신)가 있었다.

당시 결혼 1년 만에 첫아들까지 얻는 등 행복한 신혼생활로 동료 선후배 배우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어느 날 난데없이 청와대의 채홍사(採紅使, 연산군 때 전국의 창기 중 미인을 뽑아 왕에게 바치던 벼슬아치) 한 분이 신부 혼자 있는 신혼집에 나타난 것이다. "각하(박정희)께서 모셔오라는 명령이십니다. 잠깐 청와대에 다녀오시게 화장하시고 15분 이내로 떠나실 준비를 하세요" 하는 게 아닌가!

순간 눈앞이 캄캄했다. 워낙 박정희 대통령의 부름에 응했던 연예인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내게도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체념과 함께 사랑하는 남편과 갓난 아들의 얼굴이 눈앞에 스쳤다. 그러면서 "이제 갓난애의 엄마로서 신혼 유부녀입니다. 홀로 있는 연예인들이 많은데 저는 좀 빼 줄 수 없을까요?" 하고 애원했다.

당시 많은 연예인들이 각하의 부르심을 영광스럽게 받아들였던 것과는 달리 이 여인은 현 남편과 만날 때 까지 연애 한 번 못 해 본 순진한 여성이었으니 각하의 부름은 상상도 못 했던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 허나 각하가 어떤 사람이라고 그런 말이 통했겠는가.

"잠간 다녀온다는데 웬 말이 그렇게 많아요?"하고 위압적인 자세를 취한 채홍사의 자세를 보고 더 반항했다가는 자신도 또 영화제작 스텝인 남편도 당장 영화계에서 매장될 것을 안 여인은 순순히 따라나설 밖에 없었다.
▲박정희가 여자를 불러다 성 노예로 삼았던 궁정동 안가  © MBC드라마 제 5공화국 화면

안내된 곳은 청와대가 아닌 그 옆의 다른 장소(후에 알고보니 궁정동 안가)로 그 다음 날 새벽까지 각하의 '성노예'가 될 수밖에 없었다.

눈이 퉁퉁 부어 집에 돌아오니 남편은 뜬눈으로 밤을 샌 듯 샐쭉해진 얼굴에 눈물이 글썽, 역시 울고 있는 부인의 설명을 듣고 부드럽게 위로해 줬다. "옆집에서 검은 차가 당신을 태우고 갔다기에 다른 연예인들처럼 우리에게도 차례가 온 것을 알았다"며 부인을 부둥켜안고 한없이 울었다.

그런데 1회용으로 끝나던 다른 연예인들과는 달리 이 여인에게는 1주에 한 번씩 계속 채홍사가 찾아 왔다.

한 달이 지났다. 그간 체념 속에서 살아 온 남편은 이날 따라 울상을 하면서 "여보, 놀라지 마, 나 오늘 무시무시한 곳에 끌려갔다 왔어, 최단 시일 내에 당신과 헤어져야 두 사람 모두 심신이 편할 거라는 협박이야, 아무래도 우리 갈라서야 하나봐. 어쩌지?" 하며 울먹였다.

부부는 밤새도록 뿌리칠 수 없는 운명을 원망하며 울고 또 울었다. 둘이 모두 사는 길은 빠른 시일 내에 이혼하고 서로의 행복을 빌어 주는 길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결론 밖에는 다른 길이 안 보였다.

그러고서는 어찌된 영문인지 남편은 바로 그 뒷날부터 자취를 감추었고 방안에서는 남편이 쓴 쪽지 한 장이 발견됐다. "여보, 나를 데리러 온 사람이 밖에 기다리고 있어, 따라가야 해. 날 찾지 마. 그게 당신도 사는 길이야. 우리 아이를 잘 길러 줘. 먼 훗날 다시 만나, 사랑해 여보." 이게 마지막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각하는 한 밤 중에 여인과 몸을 섞고 나더니 '내가 부자 미국인을 소개할 테니 당장 결혼해서 미국으로 가 살라'고 명령했다. 여인은 무슨 후환이 있을지 두려워 목을 앞뒤로 흔들었지만 내심은 각하의 속박에서 해방된다는 희망 섞인 기쁨도 자리했다.

신랑은 뜻밖에도 60이 넘은 미국계 할아버지로 신부 될 여인의 아름다움에 마냥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 노인은 결혼 후 미국에서 6년 만에 많은 재산과 아들을 남기고 저 세상으로 갔다.

40여 년 전에 이토록 기구한 운명을 지녔던 할머니(현재 77)가 순간이나마 행복했던 신혼시절을 회상하며 현재 미국 하늘 아래 전 남편의 아들, 미국인 남편의 아들 등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후 전 남편과는 자신이 재혼한 탓도 있어서 완전히 소식이 두절 되었다고 한다.

최근 유네스코(UNESCO=국제연합교유과학문화기구)가 전 세계 독재자들의 '인권유린보고문'을 발행했다는 소식이다.

그 중에는 김정일이 미인을 납치 후 자기 종신 첩으로 썼던 사건도 포함돼 있다.
▲ 연예인과  악수하는 박정희   

필자가 궁금한 것은 박정희가 일회용품 내지 소모품으로 쓰던 2백여 명의 여성(김재규 변호인 이동일 변호사가 확인한 채홍사 한 명의 수첩에 기록된 것만 2백여 명임)에 관련된 내용은 왜 포함돼 있지 않느냐는 것,
[잊혀진 특보] 유신 독재시절 '박정희 여자 ' 200여명!  이 점에서는 단연 박씨의 악행이 김정일의 추종을 불허했으니 말이다.

한국의 역대 어느 임금도 유부녀를 자기 노리개로 빼앗은 경우는 극히 드물다. 천인이 공노할 일이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한국 국민의 의식 수준이 대통령 될 자와 되어서는 안 될 자를 가릴 수 있는 정도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인지...

김현철 칼럼니스트    기사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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