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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의 죽음에 슬퍼해야 하는가?

"나쁜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는 용기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3/04/10 [20:33]

마녀의 죽음에 슬퍼해야 하는가?

"나쁜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는 용기 

서울의소리 | 입력 : 2013/04/10 [20:33]

 
                 <어제 나쁜 사람이 죽었다>


어제 신자유주의의 상징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이 사망했습니다. 철의 여인의 죽음에 많은 사람들이 애도를 표하는 가운데 필자는 그녀를 향한 애도의 분위기속에서 큰 이질감을 느낍니다. 전혀 슬프지 않기 때문이죠. 

"이런건 잘했으나 이런건 잘못했다", "이런건 칭찬받지만 이런건 비판받는다", "논쟁적 인물이다" 

대다수의 한국언론들은 저런 식의 기계적 중립을 '사명'으로 여기고 있는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그런 사명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기에 덤덤하게 제 소견을 씁니다. 그녀의 죽음이 아쉬운 한가지 이유가 있다면 대처가 이 글을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대처의 통치를 받았던 영국인들은 한국언론들의 보도와는 달리 그녀에게 그런 양가적인 감정을 갖고 있지 않은것 같습니다. 대처의 죽음에 슬퍼하지 않는, 아니 기뻐하는 사람들은 대단히 많습니다. 

그의 유산은 공론 분열, 사적 이기심이자 인간 정신에 족쇄를 채우는 탐욕에 대한 숭배다 - 가디언

대처는 영국이 오늘날 직면한 모든 문제에 대해 책임이 있다 - 켄 리빙스턴 전 런던시장

대처리즘은 우리를 여전히 해치고 있는 국가적 재난이다  - 인디펜던트

대처는 현대에서 가장 분열적이며 파괴적인 총리였다 - 영화감독 켄 로치 

대처는 (기존의) 영국을 파괴했고, 더 잔인하고 난잡한 무언가로 만들었다 - 데일리미러

우리는 그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더스타

오랫동안 대처가 사라지길 기다려왔기에 그의 죽음에 유감이라고 밝힐 수는 없다. 그가 땅에 묻히며 대처의 정책들도 함께 사라지길 기대할 뿐 - 영국 탄광노조 사무총장


저들의 말에는 바로 오늘 죽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독이 서려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 독을 품게 한 사람은 마가렛 대처 자신이었습니다. 영국 <미러>지의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처의 국장(State Funeral)에 반대하는 사람이 75%에 이르며, 국장에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벌어져 순식간에 3만 여명이 참여했다고 하니 영국사회에 반 대처 정서가 얼마나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대처의 죽음을 전해들은 시민들이 트위터로 즉석 파티를 열고 수백명의 인파가 거리에서 "잘가라 마녀"를 외쳤다는 소식은 한국의 엉뚱한 애도열기를 민망하게 합니다. 대처자신도 죽기전에 이를 의식했는지 "내 장례식이 국장으로 치러지길 원치 않으며 행사비용으로 돈을 낭비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자본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대처리즘'을 버리지 않은 셈입니다.
 
         <대처시절 우울했던 영국사회의 모습을 표현한 영화 풀몬티>

노동탄압, 긴축재정, 포틀랜드 전쟁, 지방자치 탄압, 인두세 도입 등 대처가 추진했던 정책들은 하나같이 전세계 모든 우파정당들의 교본이라 할만한 것들입니다. 대처리즘은 그리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IMF탈출기, 노무현 정부의 세계화, 이명박 정부의 노동탄압 등 우리사회에서 약자가 소외받았던 모든 정책에 대처의 정신이 녹아있습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의 우파정당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을 모아 놓으면 그것이 바로 대처리즘입니다. 대한민국 정치인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정치인 중 한명인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롤모델로 대처를 꼽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나쁜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는 용기 

유독 망자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는 우리나라는 "나쁜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는데 용기가 필요한 나라입니다. 망자에 대해 관대한 문화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사후평가에 온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같은 '전통'은 앞으로 맞이하게 될 악인들의 죽음을 걱정하게 합니다. 내일 갑자기 전두환이 죽는다면 한국의 주류언론들은 "공과 엇갈려"같은 끔찍한 평을 내놓을지 모릅니다. 이와 관련해 어제 영국의 어떤 변호사가 좋은 글을 남겼습니다.  


공적 인물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위험하다. 일반 개인이 사망했을 때 "망자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는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논란이 많은 공적인 인물, 특히 상당한 영향력과 권력을 휘두른 인물이라면 그의 죽음에 대해 '존경어린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 글렌 그린월드. <프레시안> 인용


특히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공적인 인물에 대한 사후평가는 보다 냉철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처의 죽음을 보도하는 한국언론들의 태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계적 중립입니다. 대처의 공과에 대해 아예 가치판단을 하지 않거나, 해외언론들이 내린 가치판단을 소개, 나열하는데 그칩니다. 언론이 명백한 과오가 있는 인물에 대해 가치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대단히 비겁한 태도입니다. 

 마가렛 대처가 세계인들에게 남긴 유일한 유산은 '효율성>>>인간성' 이라는 야만입니다. 노동탄압과 부의 대물림, 인간의 서열화·계급화, 극단적 효율성추구... 그녀가 남긴 것들을 총평하자면, 대처는 부자의 천사이자 빈자의 마녀였습니다. '자본의 효율성'이라는 대처의 가치가 아닌, 평등,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로 평가할때 대처를 추앙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양심없는 부자들 뿐입니다. 그녀에 대한 온정적인 사후평가가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수많은 리틀 대처를 낳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위기에서 구했다"

이렇게 공허한 업적도 없습니다. 많은 언론들이 '영국이 망하지 않은 것'을 대처의 업적이라 칭송하지만, 어지간한 독재자들조차 자신의 나라를 망하게 한 예는 드물다는 사실에서 볼 때 실로 '민망한 업적'에 불과합니다. 대처리즘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위기에 빠진 영국경제를 구했다지만, 대처만큼 우파적 시각에서 바라볼 때 지구상에 위기에 빠지지 않은 나라는 없습니다. 서민들을 위기에 몰아넣은 정치인에게 국가를 구한 영웅이라는 찬사를 보내다면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라는 반문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더욱이 만인의 영웅 넬슨 만델라를 테러리스트라 비난하고 수천수만명의 양민을 학살한 피노체트와 후세인을 구명하려했던 정치인을 영웅으로 묘사하는건 인류역사에 대한 모독입니다.   

<"그의 장례식을 민영화하자. 경쟁입찰에 부쳐 최저가에 낙찰시키자" 조롱한 켄 로치>


노동탄압, 긴축재정, 포틀랜드 전쟁, 지방자치 탄압, 인두세 도입 등 대처가 추진했던 정책들은 하나같이 전세계 모든 우파정당들의 교본이라 할만한 것들입니다. 대처리즘은 그리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김대중 정부의 IMF탈출기, 노무현 정부의 세계화, 이명박 정부의 노동탄압 등 우리사회에서 약자가 소외받았던 모든 정책에 대처의 정신이 녹아있습니다. 더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의 우파정당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모든 정책을 모아 놓으면 그것이 바로 대처리즘입니다. 대한민국 정치인 중 가장 오른쪽에 위치한 정치인 중 한명인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의 롤모델로 대처를 꼽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나쁜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는 용기 

유독 망자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는 우리나라는 "나쁜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는데 용기가 필요한 나라입니다. 망자에 대해 관대한 문화는 역사적 인물에 대한 사후평가에 온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같은 '전통'은 앞으로 맞이하게 될 악인들의 죽음을 걱정하게 합니다. 내일 갑자기 전두환이 죽는다면 한국의 주류언론들은 "공과 엇갈려"같은 끔찍한 평을 내놓을지 모릅니다. 이와 관련해 어제 영국의 어떤 변호사가 좋은 글을 남겼습니다.  


공적 인물의 죽음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된 것일 뿐 아니라 위험하다. 일반 개인이 사망했을 때 "망자를 나쁘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요구는 타당할 수 있다. 하지만 논란이 많은 공적인 인물, 특히 상당한 영향력과 권력을 휘두른 인물이라면 그의 죽음에 대해 '존경어린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 - 글렌 그린월드. <프레시안> 인용

특히 역사에 큰 자취를 남긴 공적인 인물에 대한 사후평가는 보다 냉철하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처의 죽음을 보도하는 한국언론들의 태도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계적 중립입니다. 대처의 공과에 대해 아예 가치판단을 하지 않거나, 해외언론들이 내린 가치판단을 소개, 나열하는데 그칩니다. 언론이 명백한 과오가 있는 인물에 대해 가치판단을 유보하는 것은 대단히 비겁한 태도입니다. 

마가렛 대처가 세계인들에게 남긴 유일한 유산은 '효율성>>>인간성' 이라는 야만입니다. 노동탄압과 부의 대물림, 인간의 서열화·계급화, 극단적 효율성추구... 그녀가 남긴 것들을 총평하자면, 대처는 부자의 천사이자 빈자의 마녀였습니다. '자본의 효율성'이라는 대처의 가치가 아닌, 평등,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로 평가할때 대처를 추앙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양심없는 부자들 뿐입니다. 그녀에 대한 온정적인 사후평가가 위험한 이유는 그것이 수많은 리틀 대처를 낳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공과를 가리자?

한줌도 안되는 공적을 내세워 태산만한 과오를 덮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종대왕의 공과를 가리자"거나 "이순신장군의 공과를 가리자"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공적이 과오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공과를 가리자”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저런 사족이 따라다니는 사람들은 공보다 과오가 월등히 많았던 사람들입니다. 대표적으로 한국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있고, 영국에서는 마가렛 대처 전 수상이 있습니다.  

공인에 대한 사후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산 사람들을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영국사회에서 대처의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가 신랄하게 이루어진다면 영국의 거부들은 세금을 더 많이 내야할 것이며, 한국사회에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가 상식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지금 청와대의 주인은 다른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망자에 대한 예의'는 사회정의를 훼손하고 역사를 왜곡하기도 합니다.    

어제 진보정의당의 심상정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의미심장한 애도의 글을 남겼습니다. 



심 의원의 말처럼 그녀는 20세기 후반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정치인이었습니다. 그 물줄기라는 것은 부자들에겐 축복이었으나, 전세계 서민들에겐 재앙이었습니다. 심 의원의 표현대로 한국에서도 대처가 구현한 야만의 시대가 저물어가길 기대합니다. 박근혜 정부가 저물어가는 시대의 막차에 올라타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랍니다. 
 
▲대처의 죽음이 말해주는 교훈- 마녀가 되려거든 (나처럼) 유명한 마녀가 되어라  
       
                 http://daramjui.tistory.com/  <정치블로그 다람쥐주인의 방> 다람쥐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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