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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수괴 전두환 경호실장도 묻혔는데,... 안창호 비서실장은 왜 현충원 안장 못해!:서울의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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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수괴 전두환 경호실장도 묻혔는데,... 안창호 비서실장은 왜 현충원 안장 못해!

故 구익균 항일애국지사,  보훈처 국립묘지 안장 거부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3/04/11 [22:26]

내란수괴 전두환 경호실장도 묻혔는데,... 안창호 비서실장은 왜 현충원 안장 못해!

故 구익균 항일애국지사,  보훈처 국립묘지 안장 거부 

서울의소리 | 입력 : 2013/04/11 [22:26]
진행 : 김현정 앵커
대담 : 구 지사의 막내딸 구혜란 씨
 
독립운동가 가운데 최고령 생존자가 누구였는지 여러분 혹시 아십니까? 바로 신의주 학생의거를 주도하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애국지사 구익균 선생님인데요. 이분이 지난 8일에 별세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국립묘지에 안장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국가보훈처로부터 안장을 거부당했다고 합니다. 지금 유족들의 반발이 대단한데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들어보죠. 고 구익균 선생님의 막내 딸 구혜란 씨 연결이 돼 있습니다.

◇ 김현정> 독립운동가 구익균 선생님.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죠?

◆ 구혜란> 월요일 7시 50분 적십자 병원입니다.

◇ 김현정> 지병으로 돌아가신 건가요?

◆ 구혜란> 노환인 거죠.

◇ 김현정>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셨죠?

◆ 구혜란> 만 105세이셨습니다.

◇ 김현정> 독립운동가 가운데 최고령 생존자였던 분.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데요.

◆ 구혜란> 네, 맞습니다.

◇ 김현정> 이분의 업적을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

◆ 구혜란> 저희 아버님이 신의주 고보를 다니셨는데 1928년에 신우라는 잡지를 발간하시고 거기에 항일운동 하시는 그런 글들을 많이 쓰셨죠. 그리고 그다음에는 신의주 학생시위 사건으로써 더 이상 한국에는 살 수가 없어서 상해로 망명하셨습니다.

◇ 김현정> 우리가 교과서에서도 배운 그 유명한 신의주 학생의거를 주도하셔서 그것 때문에 중국으로 도피해야 되는 상황이 되셨던 거죠?

◆ 구혜란> 네. 아버님하고 같이 하신 분들이 많이 잡히셨는데 아버님은 도피하실 수가 있으셨나 봐요.

◇ 김현정> 그래서 중국에서 도산 안창호 선생을 만나신 거군요?

◆ 구혜란> 그렇죠. 1929년부터 그러니까 32년 안창호 선생님이 윤봉길 의사사건으로써 서울로 이송되셔서 오시기 바로 전까지 모셨던 분이십니다.

◇ 김현정> 도산 안창호 선생의 비서실장을 하면서, 그리고 항일운동을 하면서 고초도 많이 당하셨죠?

◆ 구혜란> 그렇죠. 저희 아버님 중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얘기가 있습니다. 아마 현충원에 계시는 동지들, 동지들을 다 한번 얘기를 시키면 더 많으실 겁니다. 왜냐면 상해하고 그런 중산대학에 계실 때 거기서 저희 아버님이 한국독립당 위원으로서 학생들을 관리하고 계셨습니다.

그거 한다는 거는 결국은 중간에서 중산대학이 중국정부에서 도와줬었어요. 그거를 저희 아버님이 중간에서 한국 유학생들을 거기에 맞는 사람을 뽑아서 거기서 중간 역할을 하시고 입학하게끔 해 주시는 거, 모든 절차를 밟아주시고, 그중에서는 유학을 오시는 분도 있었고 어떤 분들은 이러한 의용군으로 끌려왔다가 도망가시는 분도 있었고.

◇ 김현정> 그러니까 국립묘지에 지금 안장돼 있는 그 많은 애국지사들, 독립운동가들이 외국 땅에서 살 수 있도록 근간을 마련해 주신 그런 큰 업적도 가지고 계시다는 말씀이에요.

◆ 구혜란> 그렇죠.

◇ 김현정> 그것을 인정받아서 독립유공자로 지정도 받으셨죠?

◆ 구혜란> 그렇죠.

◇ 김현정> 독립훈장 애족장을 받으셨어요. 그래서 며칠 전에 돌아가셨을 때 당연히 국립묘지에 안장이 되는 걸로 생각을 하셨던 거죠?

◆ 구혜란> 거기에 대해서는 의심할 거 없죠.

◇ 김현정> 준비를 하고 계셨어요.

◆ 구혜란> 그럼요. 근처에 아버님이 직접 가서 내가 여기 묻히실 거라고 얘기까지 하셨으니까요.

◇ 김현정> 생전에 국립묘지를 방문하셨어요?

◆ 구혜란> 많이 방문하셨죠. 왜냐하면 다 동지들이 거기 계시는데요.

◇ 김현정> 동지들이 거기 계시니까, ‘이 자리는 내 자리다.’ 이런 말씀도 하셨어요?

◆ 구혜란> 네.

◇ 김현정> 그런데 국가보훈처로부터 국립묘지 안장이 안 된다는 통보는 언제 받으셨어요?

◆ 구혜란> 안 된다는 통보를 받기 전에 심사를 해야 된다는 통보를 받아서 무슨 심사를 하냐 그랬죠. 그게 발인이 수요일이면 화요일 아침에요.

◇ 김현정> 그러니까 안장되기 직전, 바로 전날 심사를 해야겠다는 통보를 받으신 거예요?

◆ 구혜란> 네.

◇ 김현정> 이유는 뭐라고 합니까?

◆ 구혜란> 법무부에서 자료를 뽑아봤는데 거기에 실형 같은 게 있다고 그거를 심사를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 실형 중에 3개는 이번에 아마 저희 아버님을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1961년에 반공법 관련해서 받으신 게 있는데 2년 전에 그게 무죄로 판결이 나셔서 이미 형사보상까지 받으신 것입니다.

◇ 김현정> 지금으로 따지자면 국가보안법 같은 건데, 이건 이미 무죄 판결 받으신 게 있고.

◆ 구혜란> 그런데 거기에 대한 정보가 아직 없으시더라고요.

◇ 김현정> 2개는 또 뭐가 문제라고 하는 거죠?

◆ 구혜란> 2개는 사업을 했다고 했는데. 70년대입니다. 그 당시에 모든 분이 아시다시피 사업하는 것도 쉽지가 않을 때이고, 그 상황에서 정부체제나 이런 데서 조그만 일을 갖고도 들어갈 수 있는 거고, 저희 아버님이 1961년에 반공을 하시고 저희 아버님이 하신 정당은 다 혁신되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항상, 왜냐면 저희 아버님과 다 독립운동 하시던 분들이 결국은 모든 그 당시의 주요 인물이 되죠. 위에서 보고 있는 그런 때죠.

◇ 김현정> 그럼 그 당시에 전과 2가지는 어떤 종류였는지 알고 계세요?

◆ 구혜란> 하나는 사문서 위조하고 하나는 조세법이라고 하는데. 조그마한 기업을 하셨을 때, 그때 조그만 기업을 했을 때 세금 내는 문제인데. 그 당시에 아마 저희 아버님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그런 거가 있는데, 저희 아버님 같은 경우에는 아마 더 쉬웠을 겁니다. 항상 보고 계시는.

◇ 김현정> 그래도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전과자는 전과자 아니냐, 그래서 국립묘지에 안장은 어렵다. 이렇게 얘기를 한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 구혜란> 그런데 그러면 어떤 전과는 되고 어떤 전과는 안 되는지 저는 한번 보고 싶습니다. 형평성에 대해서.

◇ 김현정> 형평성?

◆ 구혜란> 네. 왜냐하면 안현태 씨에 대해서는 2년 6개월 선고를 받고, 그것도 뇌물이라는 것은 종류가 다르지 않습니까?

◇ 김현정>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 말씀하시는 거죠?

◆ 구혜란> 그렇죠. 그분은 들어갈 수 있으시다면 어떤 거는 되고 어떤 거는 안 되는지 그거의 기준은, 그리고 거기에서 심의하시는 분들을 제가 검색을 하다 보니까 해석이 다르시더라고요. 저희 아버지는 국립묘지의 영예성의 훼손 여부를 심의를 했고 그거를 찬성하시던 분은 그게 별로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데 같은 분들이 그거를 심의를 하셨는지, 아니면 보는 방법이 달라서 그런지 형평성에 어떤 기준이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 김현정> 그러니까 2011년에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실장 안현태 씨, 어마어마한 비자금 만드는데 일조해서 징역형 살았던 그분은 심의위원회를 통과해서 지금 안장이 돼 있고, 왜 독립운동가, 독립유공자인 구익균 선생은 안 되는가? 이 부분을 유족들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말씀.

◆ 구혜란> 그렇죠.

◇ 김현정> 그럼 고인의 묘는 지금 어떻게 하셨어요?

◆ 구혜란> 궁여지책으로 시립승화원에 화장을 하게 됐습니다. 원래는 매장을 하시기로 해서 대전에 가시기로 했는데.

◇ 김현정> 그러면 유골은 그냥 납골당에 안치해 놓은 상태고. 당연히 재소를 하시겠군요?

◆ 구혜란> 그렇죠. 저희가 시립승화원을 간 것은 앞으로 현충원에 가실 거라는 생각 하에 지금 당장은 갈 때가 없으니까요, 우선. 저희 아버님 여태까지 하신 일에 비해서, 저희 아버님이 어디 한 곳 묻힐 곳이 없습니다.

◇ 김현정> 어디 한 곳 묻힐 곳이 없다.

◆ 구혜란> 네. 저희 아버님의 평생을 한국의 독립으로부터 시작을 하여 한국이 어떻게 평화통일까지 항상 염원하고 계시는 저희 아버님의 돌아가신, 그 몸은 어디 갈 곳이 없네요. 대한민국이 그렇게 작은 데인지 몰랐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묻힐 곳이 없습니다.

◇ 김현정> 독립운동가가 어디 한 곳 세상을 떠난 후에 발 편히 뻗을 곳이 없더라, 이 말씀이 참 가슴이 아프네요. 어떻게 다시 재심을 요청하실 건가요? 바라시는 건 뭔가요?

◆ 구혜란> 첫 번째, 바라는 거는 저희 아버님의 명예를 다시 찾고 싶습니다. 저희 아버님이 여태까지 하신 일을 결국은 조그마한 두 가지 일로써 거의 다 없어진 거나 마찬가지가 됐기 때문에 저희 아버님의 명예를 찾아드리고 싶고요. 저희 아버님이 편하게 오래 계실 수 있는 곳, 영원히 계실 수 있는 그런 곳에, 그것이 저는 현충원이라고 믿고 있는데 아버님이 그렇게 알고 가셨기 때문에.

◇ 김현정> 국립묘지 안장기준이 사실은 자주 논란이 돼 왔습니다. 특히 아까 말씀하신 전두환 전 대통령 경호실장으로 어마어마한 비자금 만들었던 안현태 씨는 국립묘지에 안장이 되면서 더 논란이 있었는데요. 구익균 선생의 안장 거부 사태는 과연 어떻게 마무리가 될 건지 우리도 함께 지켜보겠습니다. 오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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