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경찰청장 조현오의 "노무현 전 대통령은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자살했다"는 발언은 4년 만에 사자(死者) 명예를 훼손한 거짓으로 최종 마무리됐다. 법원은 조 전청장의 1심부터 대법원까지 세번의 선고를 내리면서 서울지방경찰청장이라는 고위 공직자인데도 불구하고 경솔한 발언을 한데 사과하지 않는 모습에 대해 매번 질타했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13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조현오에 대해 원심과 같이 징역 8월을 선고했다. 조현오는 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2010년 3월 경찰 내부강연에서 "노 전대통령이 뛰어내리기 바로 전날(2009년 5월 22일) 계좌가 발견되지 않았습니까. 차명계좌가, 10만원짜리 수표가 타인으로…"라고 발언해 고 노 전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2012년 9월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검찰조사에서 "우리은행 삼청동 지점에 권양숙 여사의 청와대 여직원 2명 명의로 된 계좌에 20억원이 들어있다"며 "이 계좌가 차명계좌"라고 주장했다. 또 노 전대통령 사망 직전 대검 중수부가 노 전대통령과 관련한 거액의 차명계좌를 발견했고 중수부에서 보관 중인 수사기록에 이러한 내용이 담겨있다고 주장했다.
조현오는 기소될 당시만해도 "2010년 당시 핵심 수사라인에 있던 사람으로부터 이상한 돈의 흐름을 발견하고 수사를 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또 다른 핵심인사로부터도 관련내용을 간접적으로 들어 차명계좌를 확신했다"고 자신의 무죄를 확신했다. 하지만 3개월 간의 심리를 거친 1심 법원의 판단은 유죄였다. 서울중앙지법 이성호 판사는 "조 전청장의 강의내용을 사실로 인정할 수 없고 허위사실 공표로 피해자들의 명예가 훼손됐다"면서 지난해 2월 조 전청장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두 번에 걸친 조현오의 심문조서, 검찰 수사보고서 등 증거를 종합해 본 결과 노 전대통령의 사망 전날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다는 조 전청장의 경찰 기동대 발언내용과 달리 거액의 차명계좌는 근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판사는 "대검 중수부의 수사상황을 알 수 있는 지위에 있는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들었다고 하면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법정에서까지 밝히지 않았다"며 "이에 관한 소명자료를 추가로 제시하지 않는 한 허위사실 공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 "자신의 발언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면 누구에게 들었는지 밝혀야 마땅함에도 법정에서도 입장을 번복하는 등 피고인의 입장이 무엇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고 질책했다. 자신의 무죄를 강력하게 주장하던 조현오는 법정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지만 법원은 구속된지 8일 만에 조 전청장에 대한 보석을 허가해 거센 비난 여론이 일기도 했다. 불구속상태로 항소심 재판을 받던 조현오는 2010년 3월 강연 전에 만나 정보를 전해들은 인물로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을 지낸 임경묵(69)씨를 지목했다. 하지만 항소심 증인으로 출석한 임씨는 "노 전대통령의 차명계좌와 관련된 내용은 모두 언론을 통해 들었을 뿐 특별히 알고 있던 부분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궁지에 몰린 조현오는 당시 수사를 총괄하고 지휘했던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도 증인으로 신청했지만 법원은 이 사건의 핵심인 '조 전청장이 강연 전 어떤 내용을 듣고 어떤 사실을 판단한 것인지'를 증명하는 것과 연관이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조현오는 지난해 9월 항소심에서 징역 8월을 선고받고 보석 취소 결정과 함께 재수감됐다. 항소심 재판부는 "임씨가 발언 직전 조 전청장과 만나거나 발언한 내용이 없다고 증언했다"며 "설령 발언 내용을 들었다고 하더라도 더 많은 정보를 접하는 경찰청장 자리에 있는 피고인이 아무런 사실확인 조차 없이 경솔하게 강연에서 발언한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현오의 발언으로 인해 노 전대통령 사망 무렵 종결된 검찰수사에 대한 의혹을 불러 일으켰고 국론 분열을 초래했다"면서 "잘못을 시인하고 유가족에게 사과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섰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나무랐다. 조현오는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고 대법원에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도 역시 "조현오가 지목한 청와대 여행정관의 계좌를 차명계좌로 볼 수 없고 자신이 들었다는 정보의 진위에 관해 다른 경로 등을 통하여 확인하려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며 "자신의 발언이 허위인점에 대하여 최소한 미필적인 고의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조현오에게는 화를 면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처신으로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겉으로는 “고 노무현 대통령이나 유족에게 사과한다” “후회한다”라고 말하면서도 진정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차명 계좌의 존재에 대해서는 “있다”라고 확신했다. 이런 태도가 오히려 유족과 노무현재단측의 분노를 사게 했다. 조현오는 5월9일 1차 소환 조사를 받기 전에도 “검찰 조사에서 모든 사실을 밝히겠다”라고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그는 차명 계좌와 관련해 아무런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 조현오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것은 지인의 말뿐이었다. 검찰 조사에서도 지인에게 들었던 말을 번복했다. “사과한다”라는 말은 진정성이 없었던 것이다.
사과 안 하고 꼼수로 일관
조현오가 노무현 재단에 고소를 당한 이후에 진심으로 사과하고, 제대로 처신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어도 됐다. 그에게는 자존심만 있고 진정한 용기는 없었던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는 “피고가 한 번만 사과를 했더라도 소를 취하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계속해서 언론을 통해 합의를 시도했고, 고소인측이 거절하고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단 한 차례도 접촉을 해온 적이 없다. 언론에 차명계좌가 있다고 계속해서 이야기하는 것은 추가적인 모욕을 주려는 의도 아니냐”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이 조현오 본인에게는 불행할 지 몰라도 고위 공직자가 어떤 처신을 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 사례이다. 불행하게 삶을 마감한 전직 대통령에 대해 사실 확인도 안 된 내용을 함부로 말하다가 스스로 법망에 걸렸다.
또 자신의 말에 책임지려는 모습보다 회피하고, 꼼수를 부리다 제 발등을 스스로 찍었다. 조현오는 이제 모든 기회를 잃었다. 그는 역사에 ‘전직 대통령을 욕보인 범죄자’로 기록될 것이다. 조현오는 교도소에서 자신의 과오를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남아 있는 자존심과 양심까지 모두 잃을 것이다. 살고 죽는 것은 이제 오로지 그의 선택에 달렸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 2012년 6월 저서인 ‘조현오, 도전과 혁신’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그런데 그의 책 표지 사진이 쇼킹했다.
왼쪽 눈두덩에 얻어맞은 듯 시퍼런 멍이 들고 오른쪽 이마에는 반창고를 붙이고 있는 자신의 사진을 표지 디자인으로 사용한 것이다. 엽기적인 느낌까지 들 정도였다.
이에 대해 조 전 청장은 “시련과 어려움을 극복하고 나름대로 뭔가를 일궈냈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퍼렇게 멍이 들고 반창고가 있다고 해서 잘못된 책이라고 반품해달라고 하면 안 된다”라고 농담 섞인 말을 했다. 당시 출판기념회는 정치로 나가기 위한 사전작업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책 표지 디자인이 자신의 실제 모습이 되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의 시련과 어려움은 극복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이다. 국민들은 조현오의 책이 아니라 ‘조현오’라는 사람을 반품하고 싶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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