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육군 고 오혜란 대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지난해 10월 15일 아침에도 노승원 소령은 오 대위를 심하게 질책했고, 오후에도 병사 진급명령 처리를 제대로 못 했다는 이유로 "너, 나가"라는 폭언을 퍼부었다. 이날 오후 6시 1분 위병소를 나간 오 대위는 다음 날 오후 부대 인근 화천군 청소년 야영장 주차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사고 직후 헌병대가 수거한 오 대위 승용차 블랙박스 SD카드에는 부대를 나온 오 대위가 독신자 숙소 주차장에 도착했다가 청소년 야영장으로 이동하는 장면, 주차된 상태에서 한 시간 반가량 음악 소리, 오 대위가 흐느껴 우는 소리가 담겨 있었다. 오 대위가 남긴 유서를 통해 "그놈의 여군 비하 발언 듣기 싫고 거북했습니다"라면서 "제 억울함 제발 풀어주세요"라고 적어 놓았다. 이어 "저는 명예가 중요한 이 나라의 장교입니다. 병사들 우리 처부(기자 주 : 군대 사단사령부 내의 조직)간부들, 타 처부 간부들 예하부대까지 짓밟힌 제 명예로서 저는 살아갈 용기가 없습니다. 단 한번도 쉬이 넘어가지 않고 수명(기자 주 : 명령을 받들다)하지 않으려 내뺀 적 없고, 고민 안한 적 없습니다. 2009년 임관부터 지금까지 제 임무를 가벼이 대한 적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라는 말로 끝을 맺고 있다.
생의 마지막까지 명예를 지켜달라고 절규했던 그는 대한민국 육군 대위 오혜란이었다 오마이뉴스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직속 상관의 지속적인 가혹행위와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육군 제15사단 여군 고 오혜란 대위의 일기 전문과 유서 전문, 공판기록 등을 오마이 뉴스가 최근 입수했다. 이들 자료에는 오 대위가 부대 전입 직후부터 자살 사망하기까지 10여 개월 동안 직속상관 노아무개 소령으로부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음을 입증하는 여러 증거들이 있었다. 다음은 오 대위가 남긴 유서와 일기, PC 메모, 주변인들의 진술을 통해 오 대위가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정황을 재구성한 것이다. 오 대위 일기장과 업무용 PC에 담긴 고민의 기록 노 소령은 부하들을 '소'라고 불렀다. 얼굴이 검은 병사는 검은 소, 키가 작은 병사는 작은 소, 여군은 여자 소라고 불렀다. 이런 부하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을 그는 '소 우리'라고 했다. 그는 부하들이 꺼리는 상관이었다. 한 병사는 그에 대해 "말을 막 하고 '어려운 스타일이다' 그래서 참모실에 들어가는 것을 모두 어려워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부대행사용 봉 관리를 소홀하게 했다며 한 남성병사에게 "자위를 하려고 봉을 가져왔냐? 너는 구멍이 없어서 자위를 못하는데 봉이 왜 필요하냐?"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특히 여성 장교·부사관은 그의 가장 만만한 상대였다. 그는 산부인과 질환이 있는 한 여군 하사를 지칭하면서 "성관계를 문란하게 하면 저런 병이 생긴다, 여자는 자고로 몸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하는가 하면, 또 다른 여군 하사에게는 "너는 여자가 짧은 반바지를 입느냐, 너는 못 생겨서 괜찮겠다"고 모욕했다. 여군 중위 한 명에게는 면전에서 "넌 얼굴에 색기가 있다, 누구처럼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마라"는 말을 했다. 사단 부관참모였던 그를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던 이가 바로 인사행정장교 오 대위였다. 그만큼 오 대위의 마음고생은 남보다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2012년 12월 부대에 전입한 오 대위의 일기장과 업무용 PC에는 그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오늘은 여군은 일 못해도 티 안 나고 말하고 후방에서 놀다온 애는 대위 달아도 적응 못하고 멍 때리고 있다고 하셨다. 2포병 부관장교 앞에서 날 지칭하지 않아도 날 빗대서 하는 이야기겠지." (2013.1.11)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극으로 치닫는 모욕... 병사 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고, 그러면서...하나를 넘어가질 않는다. 말투, 자세, 업무, 지식, 태도 다 맘에 안 드시나 보다. 진짜 미래가 없다." (2013.1.17) 그는 오 대위가 기안한 문서를 면전에서 찢어버리거나, 검토를 미루기도 했다. 그렇다고 오 대위의 업무능력이 남보다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 동료들은 "항상 10~11시까지 근무하고, 주말도 근무하고 사수나 병사들과 얘기도 많이 하고 회식도 하는 좋은 사람"(한OO 일병), "사단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며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분으로 알고 있다. 성실한 장교로 칭찬을 많이 듣는 좋은 분"(박OO 중위)으로 오 대위를 기억했다.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모욕과 성적 수치심 시간이 갈수록 오 대위의 절망감과 괴로움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복명속도가 늦는 건 보고문서를 가져가도 검토 안하시거나 맘에 들지 않는다고 빽하시거나 찢어버리시니까..."(2013.2.15) "보고서를 안 올렸다라. 난 이미 10번 넘게 올렸지만 결제 안하고 계속 수정만 하다가 못한 거잖아. 그걸 보고 내가 안 한 거라. 그래 결과는 내가 안한 게 되어 버린 거겠지. 진짜 슬프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2013.2.18) "일을 사서 만들고 트집 잡는... 점검 애써서 해놨더니 제대로 본인의 의도와는 안맞게 했다고 난리 난리" (2013.7.18) 오 대위가 날이 갈수록 산더미 같이 쌓여 가는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선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주말에도 출근할 수밖에 없었다. 일요일도 온전히 오 대위의 휴식을 보장해 주지는 못 했다. 그는 불교 신자인 오 대위에게 그는 매주 교회에 나올 것을 종용했고, 예배 시간에 오 대위가 보이지 않으면 교회에서 봤으면 좋겠다는 카카오톡을 보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오 대위를 괴롭혔던 것은 시도 때도 없이 터져 나오는 그의 모욕과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언행이었다. 그는 병사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오 대위에게 "너는 일 처리가 왜 이렇게 느려 터졌냐. 소 같다. 너는 15사단 여자 소다. 미련하다. 곰 같다"거나 "이래서 여군은 쓰는 것이 아니다. 너 같은 새끼가 일을 하니까 군대가 욕을 먹는다. 너 같은 새끼를 둔 내가 불쌍하지도 않냐"는 모욕적 언행을 수시로 했다. 심지어는 다른 여군 장교가 듣고 있는 자리에서 "자는 시간 빼고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그 의도도 모르냐? 같이 자야지 아나? 같이 잘까?"는 발언까지 했다. 이날 오 대위의 일기장과 업무용 컴퓨터에는 오 대위의 수치심이 잘 나타나 있다. "수치스런 이야기를 들었다. 농담이라고 할지라도 나랑 잘래? 이건 심하지 않은가... 치욕적이다. 저 사람은 도대체 날 얼마나 우습게 보면 저런 저질 B급 발언을 서슴치 않고 한 것일까"(2013.7.12 일기) "자는 시간 빼고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는데 그 의도도 모르나? 같이 자야지 아나? 같이 잘까? 힐끔 반응 보더니 나도 원하지 않아. 그러면 실무자와 참모관계가 안되니까. 그런데 왜 자꾸 의도를 모르나?"(같은 날 업무용PC 메모) 급기야 그는 부관참모부 사무실에서 오 대위가 X반도(서스팬더)를 차고 있는 것을 보고 "X반도는 이렇게 매는 거다"라며 손으로 피해자의 뒤편에 서서 어깨를 만지고 등 부위를 쓰다듬거나 "보좌관 힘들지"라고 하며 오 대위의 어깨를 주무르는 추행을 저질렀다. 오 대위의 아버지는 법정에서 지난해 추석 연휴 때 집에 온 딸이 여느 때와는 달랐다고 진술했다. "거실에서 아빠랑 얘기 좀 하자니까, 할 얘기 없다며 일어서길래,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거실에서 붙잡아 앉혀서 맥주를 한잔 하면서 울면서 얘기를 하는데 지금까지 딸을 키우면서 딸이 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딸이 회식자리에서 참모가 다리를 더듬고 노래방에서 안고, '하루 밤만 자면 군대 생활 편하게 할 건데, 그 의도도 모르나?'면서 성희롱을 하더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부모로서 치가 떨렸고, 왜 군대를 보냈나 후회도 되었다." (2014.2.11 2군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오 대위 아버지 증언) 성추행 및 가혹행위 등으로 자살한 고 오혜란 대위 추모제 24일 오후 7시, 서울 파이낸스센터 앞 돌계단에선 지난 해 10월 직속상관의 지속적인 가혹행위와 성추행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오혜란 육군 대위의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추모제에는 김상희 국회 여성가족위원장, 민주당 진성준, 배재정, 남윤인순 의원, 정의당 김제남 의원 등 정치인들과 시민 50여 명이 모여 오 대위를 추모하는 촛불을 밝혔다. 추모제에서 김상희 위원장은 "얼마나 당차고 똑똑한 딸이었으면 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군인이 되겠다고 당당하게 장교로 임관했겠느냐"면서 "이런 딸을 잃고 슬픔에 빠진 아버님을 뵈니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어처구니없게도 상관에게 모욕을 당하고 성추행당하고 가혹행위를 당한 후 얼마나 억울했으면 오 대위가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겠느냐"면서 "대한민국을 지키겠다고 씩씩하게 나선 이 여성을 대한민국이 지켜주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진성준 의원은 "국방부와 군을 감시하는 국회 국방위원으로서 이런 처참한 사건이 발생한데 대해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한다, 이 사건이 발생 직후 국방위원회에서 철저한 수사와 처벌을 주문했고 국방장관은 이와 같은 성희롱,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는 무관용의 원칙을 견지하겠다는 답변을 들은 바 있다"면서 "갑작스럽게 얼토 당토 않은 판결이 나와서 무척 놀랐고 당혹스러웠다"고 밝혔다. 유족측 법률대리인 강석민 변호사는 "동료 법조인들에게 알아봐도 이번 군사법원의 판결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면서 "모든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려놓고, 이에 대한 적절한 선고가 있어야함에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 20일 육군 제2군단 보통군사법원은 군 형법상 군인 등 강제추행, 폭행, 직권남용, 가혹행위 혐의로 기소된 노아무개 소령에게 '징역 2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노 소령의 모든 혐의는 인정되지만 추행의 정도가 비교적 가볍고 초범인 점을 고려해 이같이 선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추모제에선 앞서 이날 오전 국방부에서 열렸던 오 대위 사건 관련 육군의 비공개 브리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자리에서 육군 관계자는 "언론에 부정확한 사실관계가 보도 되고 있다"면서 "성에 대한 언급은 없었음에도 유서에 '하룻밤 자면 편할 텐데' 등 성관계 요구가 있었던 것처럼 부정확한 보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의 설명을 요약하면 가해자 노 소령이 오 대위에게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긴 했지만, 이것이 직접적인 성관계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국방부 관련기사목록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