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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일제에 항거한 '민족시인 이육사' 대구 집 철거 위기

부서진 채 방치된 이육사의 흔적.. "집터라도 보전돼야"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18/10/17 [14:52]

끝까지 일제에 항거한 '민족시인 이육사' 대구 집 철거 위기

부서진 채 방치된 이육사의 흔적.. "집터라도 보전돼야"   

서울의소리 | 입력 : 2018/10/17 [14:52]

<청포도>와 <광야>의 항일 민족시인 이육사(본명 이원록·1904~44)선생의 대구 집이 아파트재개발 지역에 포함되어 철거 위기에 놓였다.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저항시인 이육사는 평생 치열한 민족정신으로 독립운동에 매진했고, 잦은 옥고로 인해 몸이 쇠약해진 뒤에는 총칼 대신 날카로운 펜을 휘둘러 일제와 싸웠던 항일투사였다.

 

일제의 침탈이 절정을 이루던 시기에 성장하며 대부분의 시인들이 일제와 타협하거나 변절하는 암흑의 시대에도 생애 대부분을 오직 독립운동에만 헌신한 영원한 민족시인이었다.


1904년에 태어나 만 23세의 나이인 1927년 첫 수감을 시작으로 1944년 1월 16일 새벽 5시 베이징감옥에서 순국하는 순간까지 17회나 투옥되었던 그는 시인임을 떠나 나라를 위해 입이나 머리가 아닌 온 몸을 던져 일제에 항거한 애국자이며,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어떻게 처신할 것 인지를 가장 확실하게 보여 준 실천 문학인이다.

 

이렇게 보존해야 할 가치가 충분한 민족 시인 이육사의 대구 옛집이 대구시가 활용 방안을 놓고 고심하는 사이 아파트재개발지역에 포함되었다. 15일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등에 따르면 이육사는 17세(1920년) 이후 대구 중구 남산동 662-35에서 17년간 거주했다. 청년기 시절을 온전히 이곳에서 보낸 것. 이육사가 1943년 옥살이를 할 당시 주소지도 대구 남산동이었다.

 

하지만 이육사의 체취가 가득 밴 남산동 집이 곧 스러질 운명에 놓였다. 집터 위로 지하 3층~지상 30층 규모의 주상복합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해 3월 설립된 지역주택조합은 현재 아파트 사업계획승인 신청과 함께 토지매입 절차를 진행 중이다.

 

현재 이육사 집터는 참담한 상태다. 외벽은 붕괴되고, 벽면에는 빨간색 라커로 칠해진 ‘철거’란 글자가 흉하게 자리하고 있다. 건물 내부 곳곳엔 녹이 보이고, 세간살이도 그대로 방치돼 있다.

16일 대구시와 지역 문화예술계에 따르면 경북 안동 출신인 이육사는 16세 때 가족과 대구로 이사와 17년간(1920~1937년) 중구 남산동 한옥에서 살았다. 그러나 이 집은 2015년 10월부터 추진된 ‘반월당 지역주택조합 사업’에 포함돼 조만간 철거될 운명을 맞게 됐다.

 

이 사업은 남산동 645번지 일대 1만7000여㎡에 아파트 6개동 440여 세대를 짓는 것으로 2016년 12월 이육사 옛집 소유권이 지역주택조합 측에 넘어갔다. 한때 지역문화예술계 사이에서 옛집 보존여론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대구시는 2016년 1억원을 들여 고택 보존에 관한 용역을 실시했다.

 

시는 용역 결과 이 집이 1950년대 당시 거주자에 의해 증·개축돼 보존 가치가 없다고 통보를 받았다. 시는 대체 방안으로 재개발사업 부지 인근에 기념공원을 마련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육사 옛집은 소유권이 조합 측에 넘어간 뒤 담이 무너지고 대문이 떨어져 나간 데다 바깥에서 집 내부가 훤히 보일 정도로 방치되어있다.

 

                 출처: 이육사문학관  서대문형무소 수감 신원카드(1934.06.20)

 

지난 10월 13일 사단법인 역사진흥원이 주관한 역사여행에 참가하여 이곳을 방문했던 박지극 시인은 "이 일대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설 때 단지 안에 육사를 기리는 공원이 조성된다고 들었다. 육사가 살던 집터 자체가 보전되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 집을 복원하지 못하면 집터는 반드시 남겨두어야 한다. 이곳 집터는 십수 년을 대구에 살았던 이육사가 대구에 남긴 마지막 유적"이라고 강조했다.

 

시 관계자는 “집터 복원을 검토했으나 안동에 있는 이육사 생가와 겹친다는 의견이 나와 사업추진이 제대로 안됐다”며 “집터가 재개발사업 부지 한가운데에 있어 이를 복원하는 건 사실상 어렵다. 재개발 사업이 이뤄진 후 근처에 ‘이육사 공원’ 조성과 ‘이육사 시비’를 건립하고 근대골목 5코스에 편입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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