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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호 경찰국장 “노동운동하다 밀고한 공로로 경찰에 특채됐다” 의혹

당시 동료들 “김순호, 프락치로 활동하며 동료들 정보 넘겼을 가능성”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22/08/05 [23:57]

김순호 경찰국장 “노동운동하다 밀고한 공로로 경찰에 특채됐다” 의혹

당시 동료들 “김순호, 프락치로 활동하며 동료들 정보 넘겼을 가능성”

서울의소리 | 입력 : 2022/08/05 [23:57]

김순호(59) 초대 경찰국장이 경찰에 특채된 이유를 두고 심각한 의혹이 제기됐다. 그와 노동운동을 함께한 동료들에게서 김 국장이 동료들을 밀고한 공로를 인정받아 경찰에 특채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1963년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고와 성균관대를 졸업한 김 국장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1989년 경장 특채로 경찰에 입문했다. 그가 초대 경찰국장이 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정치권에선 경찰 특채 과정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김순호 경찰국장의 성균관대 81학번 동문들은 “1989년 4월 김순호가 돌연 사라졌는데 그 뒤로 인노회 활동을 하던 이들이 구속됐고 그는 경찰이 돼 있었다”고 5일 주장했다.

김 국장의 대학 동문들이 1989년 후반 노동운동을 같이하던 김 국장이 ‘대공 특채’로 경찰이 된 것에 대해 “채용과정이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동문들은 조만간 김 치안감의 행적을 밝히라고 요구하고 경찰국장 사퇴를 촉구하는 입장을 밝힐 계획이다.

김 국장의 동문들은 행안부 경찰국이 ‘31년 전 내무부 치안본부의 부활’이라는 비판이 나왔는데 하필이면 자신들을 배신한 이가 그 자리를 맡은 것에 대해 분노했다. 

동문들은 김 국장을 인노회의 핵심 활동가로 기억했다. 김 국장은 인노회 활동을 하면서 가명으로 ‘김봉진’이라는 이름을 썼다고 한다. 당시 노동현장에 취업해서 노조를 결성하는 대학생들 가운데 하나였다.

이와 관련해 김 국장과 노동운동 시절 월세방을 같이 살았다던 김현동(60)씨는 “지금 시기 경찰국 쓰임새가 1980년대의 부활이라고 비판하지 않나. 순호가 처음 경찰이 됐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도 배신감이 들었지만, 경찰국장 자리까지 수락했다는 건 절망적인 심정이 느껴진다”고 했다. 박경식씨는 “순호는 보안과 경력으로 승진한 뒤 지금 국장 자리까지 도달했다”며 “경찰국 신설 성격과 배경이 김순호 자체로 드러난다”고 했다.

김 국장과 함께 인노회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김 국장의 잠적 시기와 인노회의 수난 시기가 겹친다면서 김 국장이 치안본부를 위해 공작활동을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 국장이 프락치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부천 지역의 인노회 책임자였던 김 국장이 아니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내용까지 당시 치안본부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고  인노회에서 활동한 사람들은 주장한다.

김 국장은 1989년 8월 보안특채로 경찰관이 됐는데 당시엔 노조 활동을 하다가 대공분실에 끌려온 이들을 관리하는 ‘대공특채’로 불렸다. 1990년에 경찰 생활을 시작한 서울의 한 간부급 경찰관은 “89~90년대에 특채로 들어온 이들은 대공분실업무를 담당했다.

 

실제로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김 국장은 지난 1989년 8월 경찰공무원임용령에 따라 ‘대공공작업무와 관련 있는 자’로 분류돼 ‘대공특채’로 치안본부 대공 3과 소속으로 경찰에 첫발을 들인 것으로 나타난다.

 

인노회는 인천지역민주노동자연맹의 또 다른 갈래로 1988년 2월에 만들어졌다. 그러다 이듬해 1989년 1월부터 관련자들이 경찰의 수사를 받아 구속되기 시작했고, 주요 활동자들이 같은 해 6월에 재판에 넘겨지면서 조직이 사실상 해체됐다. 안제환 인노회 회장은 6월에 구속됐다.

 

김 국장과 인노회 활동을 같이했던 박경식(59)씨는 “김순호는 1989년 4월 갑자기 사라졌는데, 그때부터 인노회 활동하던 사람들이 잡혀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가 경찰 특채였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했다. 이 당시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기억하고 있다는 인노회 소속이자 같은 학교 선배인 ㄱ씨는 “구속되기 전에 김순호의 지인이 ‘김순호가 사라졌고, 찾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시점이 1989년 6월 전이었다”고 밝혔다.

 

인노회 활동을 하며 김 국장과 가장 친했던 사이였다고 주장한 ㄴ씨(59)도 “인노회 관련해 경찰의 조사를 받았을 때 지회장이었던 순호와 개인적으로 나눴던 얘기까지 경찰이 알고 있었다. 경찰의 수사력이 엄청나다고만 생각했다. 당시 순호가 잠적했지만, (행적에 대해서) 의심하지는 않았다”면서 “그런데 그해 8월에 경찰 특채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듣고선 수상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퇴직 경찰관(경찰대1기)은 “대공 수사를 담당하던 이들이 ‘김순호를 전향시켜서 업무에 많은 도움이 됐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한겨레는 김 국장의 설명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그는 문자메시지로 “차차 말씀드리겠다. 골수주사파로 더이상 빠지지 않고 완전한 단절, 이게 팩트다”고 답했다. 

 

김 국장은 YTN에 “인노회 사건이 터진 지난 1989년 초쯤 북한의 주체사상에 물들어가는 운동권 흐름에 회의를 느껴 고향으로 내려갔다. 이후 고시 공부를 하다가 내적 갈등이 심해져 같은해 7월쯤 직접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대공분실을 찾아가 인노회 사건 책임자에게 그동안의 활동을 자백했다. 당시 경찰 책임자가 ‘대공 특채’를 제안하면서 곧바로 경찰의 길을 걷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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