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광고
광고
로고

[시론] '길들여진 기자들'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이 궁금해하는 걸 물어주고, 답을 들어주는 게 기자가 할 일"

서울의소리 | 기사입력 2022/11/29 [17:03]

[시론] '길들여진 기자들'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이 궁금해하는 걸 물어주고, 답을 들어주는 게 기자가 할 일"

서울의소리 | 입력 : 2022/11/29 [17:03]

지난 11월 1일 스텔라 킴 미국 NBC 기자는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외신 기자회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에게 "젊은 친구들이 그곳에 가 있던 것이 잘못된 것인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같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라고 보는가?"라고 날카롭게 질문을 던졌다.


<‘기레기’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길들여지나>- 홍사훈 KBS 한국방송 보도본부 기자

 

최근 대통령 전용기에 MBC 기자가 탑승거부 당하는 전례없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그 이후 대통령실 기자단이 보인 행태입니다.

 

그 비행기를 타고 간 건 물론이고 그 이후 대통령실의 조치에 입닫고 있는 기자들을 보면서 분노했습니다. 기자가 아니라 그냥 회사원, 월급쟁이가 돼버렸습니다.

 

왜 기자들이 회사원들이 됐을까, 제 나름대로 생각한 이유를  '분노가 세상을 바꾼다' 책에서 

기술한 적이 있어 옮깁니다.

 

- 2021년 12월 26일, 대선을 코앞에 두고 당시 국민의힘 윤석열 대통령 후보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기자회견을 가졌습니다. 김건희 여사가 공식 석상에서 기자들 앞에 선 건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가담했는지뿐만 아니라 그간 제기돼왔던 학위와 경력 위조 의혹에 대해서도 궁금한 점이 몹시 많았습니다. 당연히 수많은 기자가 질문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저 역시 다른 무엇보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대해 궁금했기에 TV로 생방송된 기자회견 장면을 지켜봤습니다. 

 

“잘 보이려고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이 있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돌이켜보니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다. 모든 것이 저의 잘못이고 불찰이다”는 8분 정도 해명이 있은 뒤 기자회견장을 나갔습니다. 

 

아무도, 어떤 기자도 손을 들어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기자 수십 명이 기자회견장에 자리 잡고 앉아서 노트북의 키보드 치고 있는 모습을 분명히 봤는데, 왜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는 거지? 궁금하지도 않나?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친분이 좀 있던 당시 국민의힘 출입기자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왜 아무도 물어보질 않았냐? 돌아온 답은 기자회견 하기 전에 사전 약속이 있었답니다. 질문하지 않기로 말이죠.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질의응답 없이 기자회견 하는 걸로 양해를 구해서 출입기자단이 이를 받아들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아니, 질문하지 말라고 해서 질문하지 않았다는 거야? 네가 그러고도 기자냐? 그럼 그냥 사무실에서 편하게 TV 보면서 노트북 치고 앉았지 왜 거기 가서 앉아있었던 거냐? 그냥 수십 명 기자들 도열한 가운데 기자회견 했다는 그럴싸한 그림을 만들어준 것밖에 더 되냐?” 

 

솔직히 답답했습니다. 이 정도였는지…. TV 중계 화면에서 언뜻 보기에도 자리 잡고 있던 기자들이 50∼60명은 돼 보이던데 손 번쩍 들고 “어렵게 마련된 자리니 이왕 나온 김에 궁금한 것 좀 물어봅시다!” 하고 나서는 기자가 어떻게 단 한 명도 없었을까.

 

이래서 ‘기레기’라는 소리를 듣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는 궁금한 걸 묻는 게 직업입니다. 국민을 대신해서 국민이 궁금해하는 걸 물어주고, 답을 들어주는 게 기자가 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대우해주고 일종의 사회적 특권을 주는 것입니다.궁금한 걸 물어보지도 못할 정도로 왜 이렇게 기자들이 용기가 없어졌을까... 

 

사실 제 나름대로 생각해보고 결론을 내린 적이 있거든요. 이건 철저히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견해이니 그렇게 받아들여 주셨으면 합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회가 이미 오래전 사라졌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힘 있고 좋은 일자리는 ‘8학군 키드’들이 점령해 버렸습니다. 

 

판·검사, 의사는 물론 대기업들이 그렇습니다. 기자 역시 좋은 일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요즘 입사하는 기자들만 봐도 외고 출신, 특목고 출신, 강남 8학군 출신들이 상당수입니다. 어쩌다 재수 좋게 돈많은 부모 만나 좋은 고등학교 들어갈 수 있게 됐고, 좋은 학원 다녀서, 좋은 대학 들어갔을 겁니다. 

 

당연히 좋은 일자리도 8학군 키드들이 차지하게 됐고 말이죠. 다른 일자리는 몰라도 기자는, 언론은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이슬만 먹고 살 수야 없겠지만, 자신에게 돌아올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세상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용기와 배짱도 있어야 할 테고 말이죠. 

 

물론 8학군 출신이라 해서, 외고 출신이라 해서, 돈 많은 부모 뒀다고 해서 모두 그렇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삼성전자 직원이라면 몰라도 언론사 기자가, KBS 기자가 영어 단어 하나 더 많이 아는 게 취재에 뭐 그리 도움이 되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언론사만이라도 입사 전형을 바꿔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토익점수 몇 점인지 따지지 말고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얼마나 있는지를 따져야 합니다. 그래야 ‘기레기’가 아닌 세상의 소금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짜 기자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홍사훈 기레기 단상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