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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선생 '사대주의'정부에 매서운 펜끝 세웠다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31주년 기념 학술대회

민주어린이 | 기사입력 2011/12/07 [11:24]

신채호 선생 '사대주의'정부에 매서운 펜끝 세웠다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31주년 기념 학술대회

민주어린이 | 입력 : 2011/12/07 [11:24]
▲  단재 신채호 선생은 사대주의 매국노들과 일본에 매서운 글빨 세우시던 언론인이셨다       © 서울의소리

 
 
 
 
 
 
 
 
 
 
 
 
 
 
 
 
 
 
 
 
 
 
 

 
6일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 2층 대강당에서 '단재 신채호 선생 탄신 131주년 기념 학술포럼'이 있었다. 이 날 포럼에는 일본에 빼앗겼던 조선의궤 환수의 주역 김원웅 전 의원을 비롯 독립운동가 이회영 선생의 손자 이종찬 전 의원 등을 비롯한 정치인, 역사복원신문 편집인 송태경 박사, 광복회 회장 등 많은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  신흥무관학교 창설로 무장항일독립에 큰 획을 그은 이회영의 손자 이종찬 전 의원.
     뒤는 단재 기념사업회 부회장 신인호 선생              © 서울의소리

 
 
 
 
 
 
 
 
 
 
 
 
 
 
 
 
 
 
 
 
 
 
 
 

 
이 날 이종찬 전 의원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사 뿐 아니라 '신채호 선생이 활약했던 북경파 독립운동도 연구해야 할 것' 이라 밝혀 주목을 끌었다.
 
▲ 역사학자들, 단재선생이 살아계셨다면 뼛속까지 친일친미라고 말하는 정부에 쓴소리 하셨을 것 일침 © 서울의소리

 
 
 
 
 
 
 
 
 
 
 
 
 
 
 
 
 
 
 
 
 
 
 

 
이 날 학술토론은 NGO신문 구장회 차장의 사회로 패널은 독립기념관 전 관장 김상웅, 간도 독립운동사 연구회 회장 서굉일,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김형목 박사가 참석하여 '단재 신채호 선생의 북경파 독립운동'과 '사대주의와 일제를 서릿발 같은 칼럼으로 규탄하던 단재의 활약'에 대해 발표를 해주셨다.
 
이 포럼에서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은 "비록 단재 선생은 80년전 인물이시지만, 자주와 독립에 관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신 역사의 능력자"라고 밝히며 "을사조약의 체결에 분노하던 '시일야방성대곡의 장지연 선생'과 함께 언론을 하셨고, 대한매일신보 주필이면서도 그 당시 비밀조직인 신민회를 가입하여 일제에 맞섰고 결국 오랜 투옥생활도 하셨다"고 말하며 "지금 뼛속까지 친일친미라고 대놓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정부는 신채호 선생의 정신을 한번 되새겨 봐야한다"고 일침했다.
 
참고로 신민회는 1907년을 전후하여 일제가 보안법·신문지법 등의 악법을 만들어 반일적 색채를 띤 계몽운동을 탄압함에 따라, 사회계몽운동가들이 국권회복운동을 위해 비밀리에 조직한 단체이다. 그러나 1911년 일제가 조작한 105인사건을 계기로 신민회 조직이 드러나고 국내에 남아 있던 세력이 탄압을 받으면서 조직이 무너졌다.

또한 단재 신채호 선생은 적극적인 독립운동가로 자금 조달차 타이완으로 가던 중 중국 지룽항에서 체포, 10년형을 선고받고 중국 뤼순감옥에서 복역 중 1936년 옥사했다. 참고로 3.1운동의 주역 유관순 열사가  3년형을 언도받은 것을 참고하면 단재 선생의 투쟁이 얼마나 격렬했던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또한 당시 신채호 선생은 '사대주의자' 이승만 배척운동을 하기도 하였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임시정부에서도 탄핵을 당했었는데 탄핵사유는 '한국은 독립가망이 없으니 미국에게 통치를 위탁해야한다'는 취지의 청원서를 제출하여 독립운동과 임시정부의 존재성을 무색케 했기 때문. 또한 3.1운동 당시도 이승만 전 대통령은 조선의 독립을 원치 않으며, 일본덕분에 조선이 개화되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크게 비난을 받은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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