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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하며 춤추는 민족을 너희들이 어찌 이기랴

유영안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3/10/23 [18:04]

집회하며 춤추는 민족을 너희들이 어찌 이기랴

유영안 논설위원 | 입력 : 2023/10/23 [18:04]

▲ 출처=연합뉴스  © 서울의소리

 

흔히 한국인을 흥()의 민족이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고난을 당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끝내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바로 이 흥이라는 연구 논문도 있다. ‘아리랑’, ‘사물놀이’, ‘봉산탈춤’, ‘판소리속에 내재되어 있는 그 흥이 2002년 월드컵 때 ~한민국을 탄생시켰고, 세계사에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촛불혁명을 탄생시킨 것이다.

 

뱃노래에 춤추는 시민들

 

21, 서울에서 거행된 전국집중촛불집회 때 광주에서 올라온 백금렬 선생이 부르는 뱃노래5만 명이 넘은 시민들이 서로 어울려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였다. 거기 모인 사람들은 뭐가 즐거워 모인 사람들이 아닌데, 마치 무슨 경사라도 난 듯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을 보고 , 저게 바로 흥이구나!’하고 감탄했다. 시민들은 가슴에 쌓인 억분과 한()을 흥으로 이겨내며 서로 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엄마가 춤을 추자 어린 자녀들이 같이 따라 춤을 추는 모습은 귀엽고, 고맙고, 한편으론 슬프기도 하였다. 놀이터에 가서 놀아야 할 저 어린 아이들이 어이하여 저 광장에 나와 춤을 출까. 그 아이들을 바라보는 젊은 엄마의 눈매가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백금렬 선생이 가사를 개작해 부른 뱃노래는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전부 뱃사공으로 만들어버리는 힘이 있었다. 각자 품새는 달라도 어깨를 들썩이며 특유의 몸짓을 통해 가슴 속에 쌓인 억분을 풀고 있었다.

 

싸우면서도 노래 부른 우리 민족

 

임진왜란 때도 아낙네들은 행주치마에 돌을 날으면서도 노래를 불렀다. 힘든 노동을 할 때도 노래를 불렀는데, 이 집단노동요는 지친 몸에 활기를 주기도 하고 일의 능률을 올려주기도 했다. 전국에서 올라온 농악팀도 즐거움을 선사해 주었다. 꽹과리, , , 장구가 어우러진 사물놀이는 이미 세계가 감탄한 바 있고, 그 리듬이 바로 오늘날 ‘K을 낳게 한 것이다. 오늘날 유행하는 의 원조가 한국의 판소리에서 기인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02년 월드컵 때 ~한민국하는 짧은 응원에도 우리 민족 고유의 리듬이 들어 있다. ‘~’ 후에 한 박자 죽인 후 한민국하는 이 리듬은 한국인이 아니면 창조할 수 없다. 이 리듬을 수구들은 한중축구 댓글 조작이란 허접한 걸로 공격하고 있으니 한심하다 못해 불쌍해 보인다.

 

흥 속에 담긴 해학과 풍자

 

우리 민족이 애국가보다 자주 부른다는 민요 아리랑을 보면 3음보의 율격도 율격이지만, 노랫말이 무척이나 재미있다. 특히 날 버리고 가신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란 부분은 슬프고 아름다운 해학이 담겨 있다. 그 노랫말에는 날 버렸으니 십 리도 못 가서 발병이 나 죽을 거라는 저주가 아니라, 제발 떠나지 말고 있어 달라는 반어적 하소연이 들어 있다. 그 반어적 하소연이 김소월의 시 진달래 꽃에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눈물 아니 흘리 오리다로 승화된 것이다. 실제로는 님이 떠나면 슬피 울겠으니 제발 떠나지 말라는 말이다.

 

한국인만 창조할 수 있다는 촛불파도타기에도 우리 고유의 리듬이 곡선으로 형상화되어 연출된 걸작이다. 지금도 필자는 마음이 어수선할 때 시민 백만 명이 모여 만든 촛불파도타기영상을 보는데, 거기엔 분노를 흥으로 승화시킨 엄청난 힘이 있었다.

 

흥이 창조한 집단지성

 

그렇다, 분노만 해서는 이길 수 없다. 그 분노를 흥으로 승화시켜 집단지성으로 만든 민족이 바로 우리 민족이다. 집단 지성( 集團知性)이란, ‘다수의 개체가 서로 협력하거나 경쟁하여 얻게 되는 지적 능력의 결과로 얻어진 집단적 능력을 말한다.

 

집단지성은 집단은 무조건 옳다는 확증편향과는 그 의미가 다르다. 집단지성은 쏟아지는 폐수가 아니라, 그것을 걸러낸 정화된 물이다. 집단지성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보편타당이 전제되어 있다. 의사들이 의대정원 증가에 반대하고 난선 것은 이기심이지 집단지성이 아니다. ‘의술이 아니라 인술을 펴야 한다는 허준의 말에 따라 봉사하는 의사가 늘어나는 것이 바로 집단지성이다.

 

흥은 자발적 몸짓

 

흥은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다양한 의견을 가진 개인의 지식이 모여 이룬 하모니다. 개체적으로는 미미하게 보이나 집단을 이루면 거기엔 무한 에너지가 폭발한다. 촛불집회에 모인 시민들 각자는 저 악랄한 윤석열 검찰의 폭압에 주눅들 수 있지만, 그들이 모이면 거대한 항공모함도 뒤집어 버릴 수 있는 힘이 발휘된다.

 

박근혜 정부 때 기무사가 탱크를 몰고 촛불시민들을 진압하려는 소위 계엄령 문건을 작성했다가 포기한 이유는 광화문 광장, 서울 광장, 숭례문 앞 어디에도 텡크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후문도 있다.

 

세계 역사상 하나의 목표로 한 곳에 그토록 많은 시민들이 모여 이루어 낸 혁명이 있을까. 그것도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말이다. 집회가 끝난 후 쓰레기를 줍는 청소년들을 보고 어느 외국 기자가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하다. “, 이 나라는 망하지 않겠구나. 저토록 어진 국민이 있으니...”

 

흥은 슬픔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무한 에너지

 

힘 대 힘의 대결은 언제나 권력을 쥔 자들이 이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힘과 흥이 대결하면 흥이 이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즐기면서 싸우는 것이다. 운동은 즐기면서 하는 것이고 일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것이다. 누군가 돈을 주며 백두산을 오르라면 오를까?

 

흥은 슬픔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무한 에너지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군체지혜(群体智慧), 즉 집단지성이다. 이 이론이 발전해 컴퓨터 공학에서는 자유 소프트웨어가 탄생한 것이다. 빅 데이터 기술은 집단 지성을 대규모의 정보 수집과 처리라는 방식으로 대체한 기술이다.

 

집단지성은 구성원이 서로 끈끈하게 뭉쳐있는 경우보다는 서로 연결이 느슨한 경우 더 잘 발휘된다. 다시 말해 항상 같이 살면서 부대끼는 군대보다는 구성원 각자가 떨어져 있으면서도 같은 목적으로 모일 때 더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은 사는 곳도 각기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며, 나이도 각기 다르다. 그들은 누군가 내린 구호에 움직이는 게 아니라, 각자의 신념에 따라 흐르는 작은 배들이다. 그 작은 배들이 같은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 역사라는 거대한 강물이다.

 

불의에 항거는 유전자가 있는 우리 민족

 

우리 민족은 동학혁명, 3.1운동, 4.19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 6월 항쟁을 보듯 누가 외치지 않아도 불의엔 자발적으로 일어나 응징한다. 속말로 더러운 꼴 못 본다란 말이 있는데, 우리 민족에겐 그 기질이 유달리 강하다. 그 기질이 나라가 어려울 땐 금 모아 나라를 살리지만, 국민을 기만하고 한 줌도 안 되는 권력으로 국민을 억압할 때는 활화산에서 쏟아지는 마그마가 되어 불의한 세력을 불태워버린다. 백금렬 선생의 뱃노래에 맞춰 덩실덩실 춤을 시민들을 보며 필자는 중얼거렸다. ‘집회하며 춤추는 민족을 너희들이 어찌 이기랴!’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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