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2일 , 심리 종결 / 4월 9일 오후 2시 선고공판중심주의 재판에서 대한민국 검찰은 가장 뒤처진 능력을 보여줬다
인간에겐 물질적 만족과 정신적 만족이 동시에 필요하다. 적당한 수준의 물질적 풍요와 함께 스트레스와 갈등으로부터 해방되면 더없이 즐거운 인생이 될 것도 같다. 물론 이건 매우 초보적인 행복의 조건이고 이에 더해 지적 욕구, 문화적 욕구 등과 나아가 실존에 대한 의미 부여까지, 사실 인간만큼 복잡한 동물이 또 있을까? 아는 것만큼 보이듯이 아는 것만큼 골치 아픈 것도 마찬가지다. 공판중심주의 재판에도 동전의 양면은 존재한다. 일단 변호사들이나 검사, 판사의 굉장한 노력이 수반된다. 소송 수행 능력에 따라 변호사 사회도 좀 더 심한 양극화에 들어설 것이고, 팀플레이가 더욱 절실해져 중소 로펌들도 많이 생겨날 듯하다. 물론 변호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비용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소송의 기간이 길어지고, 조서 위주의 재판보다 공판 중심의 재판은 보다 설득력 있는 증거 싸움으로 변할 것이므로 능력에 따른 승소율로 특정한 변호사의 경우 엄청난 비용의 지불이 필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물질적 절약을 위해 제대로 된 재판을 포기할 것인가? 이런 절약은 절약이 아니라 정의를 왜곡해 사회 갈등을 누적시킬 것이고, 결국 공동체의 건강함을 해칠 터이므로 모두에게 손해다. 결국, 현대 사법 제도는 더욱 기술적으로 발전할 것이고 어느 만큼 전문적 사법종사자의 폭을 넓힐 것이다. 사법시험 합격하면 철밥통이라는 말도 옛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분야로의 진전, 이게 우리 법조계가 나아갈 방향이 확실하다면, 이번 재판에서 대한민국 검찰은 가장 뒤처진 능력을 보여줬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인식의 차이는 똑같은 법 조항을 읽으면서도 다른 해석을 가져오게 한다. 오늘은 한 전 총리에 대한 변호사의 피고인 신문을 시작으로 재판이 시작되었다. 어제의 수치는 잊은 듯, 아니 모르는 듯 오늘도 검찰은 씩씩하게 공판에 나섰고 어제부로 구치소에 다시 수감된 곽영욱 피고인도 공판정에 앉은 가운데 약 1시간 30분여에 걸친 변호인의 피고인 신문이 이어졌다. 그리고 검찰의 의견진술. 검찰은 본격적인 의견진술에 들어가기 전에 이 사건이 정치적 사건이 아니라 고위공직자의 뇌물 사건으로서 뇌물 사건의 특성상 물증이 없는 사건이므로 뒷조사, 흠집내기 등의 비판은 수사 성격상 맞지 않은 비판이라고 전제한 후 의견 진술에 들어갔다. 16시 33분경에 시작된 의견진술은 17시 33분까지 장장 1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검찰의 구형은 징역 5년, 추징금 4,600만 원이다. 추징금은 번복해 5만 달러는 선고 시의 환율로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그리고 곽영욱 피고인에 대한 의견진술. 딱 1분 만에 끝났다. 징역 3년 6개월이라는 구형량이 검사의 입에서 나온 순간 방청석에는 소란이 일었다. 한 시민은 검찰을 향해 욕설을 섞어 비판하다 재판장의 명에 의해 재판정 밖으로 추방되는 일이 벌어진 가운데 검사의 의견 진술이 종료된 시간은 17시 35분. 이어서 피고인 측의 최후변론이다. 먼저 곽영욱 피고인의 변론이 이어졌다. 횡령 혐의보다 정치인에 대한 뇌물 공여 문제로 조사받는 일이 더욱 고통스러웠다는 말로 시작한 최후변론은 이른바 ‘빅딜’은 없었으며, 증권거래법은 주식 장기보유에 따른 평가차액이고, MBC의 2580 프로그램에서 보았듯이 곽영욱 피고인은 검찰에 위축되지 않았고, 검찰이 이미 정치권에 대한 금품 제공에 대해 아는 상태에서 추궁해와 오직 살기 위해 한 전 총리에 대해 진술한 것이라는 요지의 변론이 약 18분간에 걸쳐 이어진 후, 약 1분간 “살려달라”는 호소로 일관하는 곽영욱 피고인의 최후 진술이 끝났다. 이어서 한 전 총리에 대한 최후 변론이 시작되었다. 변호인은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3번의 준비기일과 13번의 재판 기일 동안 공판중심주의 재판을 경험하는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했다. 그리고 1시간 15분간에 걸쳐 변론이 이어졌다. 그동안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났던 쟁점과 증거들을 대부분 열거하면서 이루어진 변론은 한마디로 예술적이었다고나 할까? 변론이 종료됨과 동시에 장내에는 박수소리가 요란했다. 그야말로 이심전심이었는지 방청객 대부분이 손뼉을 친 것이다. 이어서 약 5분여에 걸친 피고인의 최후 진술, 장내는 숙연했다. 한 전 총리는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사건임에도 재판장이 매우 중립적이고, 충분히 법률에 들어맞는 방식으로 재판을 이끌어온바 이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특히, 학생의 신분으로 조용히 공부하며 지내는 아이마저 마치 깨끗하지 않은 돈으로 유학 생활을 하는 듯 거론되고, 아이의 홈페이지까지 뒤지는 등 집요한 모욕주기로 말미암아 상처받았을 것을 생각할 때 엄마로서 한없이 미안하고 고통스러웠다는 심정을 드러내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장내에 눈물을 닦는 이들이 보인다. 재판장은 2010년 4월 9일, 오후 2시에 선고하겠다고 공지하고 재판을 마무리했다. 결과가 어떻게 나올까? 충분히 기대해도 좋을 일이지만, 재판부의 결정은 그냥 기다리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보다는 재판의 진행을 보면서 내가 본 재판장은 그야말로 존경스러운 사람이었다. 그의 정치적 지향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분명히 우리 사법부의 큰 동량이었고 내일이었다. 오늘도 밤늦게까지 음주를 했다. 이제 나 자신에게 약속한 하나의 전쟁이 며칠 뒤면 끝이 난다. 엉겁결에 약속한 일을 어설프게 끝내는 것 같아 아쉽지만 이런 아쉬움을 잠시 뒤로 하고 이제 옷을 갈아입고 제주도로 떠날 시간이다. 반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해방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한민국 공권력에 의해 무참하게 희생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우리는 민주올레를 제주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그냥 걸을 것이다.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오랜만에 만끽하자면, 내가 이렇게 제주의 유채꽃과 멀리 보이는 한라산에 감탄할 수 있음이 우연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cL) 논가외딴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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