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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한말인가 "인민에 해가 되는 나쁜 왕은 죽일 수 있다"

21일, 단재 신채호 선생 서거 76주기 행사 충북 묘소에서 열린다

민주어린이 | 기사입력 2012/02/20 [21:13]

누가 한말인가 "인민에 해가 되는 나쁜 왕은 죽일 수 있다"

21일, 단재 신채호 선생 서거 76주기 행사 충북 묘소에서 열린다

민주어린이 | 입력 : 2012/02/20 [21:13]
 
▲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76주기 추모제가 21일 충북 단재 사당에서 열린다        © 서울의소리

 
 
 
 
 
 
 
 
 
 
 
 
 
 
 
 
 
 
 
 
단재 신채호 선생 순국 76주기 추모제가 21일(화) 오전 11시 충북 청원군 단재 신채호 선생 사당과 묘정에서 거행된다.
 
단재 선생은 1880년 충청도 회덕현에서 출생하여 선조로부터 한학을 배우고 청년시절 당시 최고의 학문기관인 성균관에 입교했던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그러나 단재 선생은 비폭력 만세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무장항일 활동을 했던 '진정한 투쟁가'였다. 일례로 단재를 논하며 빠질 수 없는 것은 일제 관리와 군경의 간담을 서늘케했던 그 이름 '조선의용대'이다. 조선의용대는 비폭력을 배격하고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건 나타나 일제를 향해 폭탄을 던지고 권총을 들이대던 일제로서는 무서운 존재들이었다.
 
김원웅(단재 신채호선생 기념사업회)회장은 “미국의 윌슨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기대를 걸고 일으킨 3·1운동이었지만 미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비호한 것에 대한 실망이기도 했다” 따라서, “독립은 피로 얻어지는 것이나 남의 힘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조선의혈단의 현실 인식은 매우 투철했었다.”고 말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그야말로 시대를 앞서가는, 지금의 탄핵운동가도 깜짝 놀랄만한 진보적인 어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인민에 해가 되는 나쁜 왕은 죽일 수 있고, 열녀도 행실이 나쁜 지아비를 떠날 수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절친한 지인의 '보석금을 내주겠다'는 호소에도 '친일하는 자의 도움은 필요없다'며 매몰차게 거절하고 36년 중국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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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재 2012/02/22 [01:21] 수정 | 삭제
  • 단재선생의 조선혁명선언에 기초한 의혈투쟁을 전개하다 한계를 느껴 보다 조직적 체계를 구축하며 형성된 군단이다. 조선의용대는 의혈투쟁으로 국권회복운동을 전개하여 온 김원봉선생이 1938년 결성한 독립군이다. 이는 후일 팔로군, 왕청현유격대, 항일연군, 조선의용대, 광복군등으로 분리 합류하여 무장항쟁을 계속하였다.
  • 민주어린이 2012/02/21 [21:09] 수정 | 삭제
  • [조선의용대는 비폭력을 배격하고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건 나타나 일제를 향해 폭탄을 던지고 권총을 들이대던]
    이라고 적었습니다. 평화 만세운동의 한계를 절감하고 라는 글도 있고요.

    저희 기사에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은 감사하오나
    단재 선생님의 이름까지 닉으로 쓰시며 기사조차 읽지 않고 오해하여 적는 댓글은 다른 독자분들과 열심히 일하는 기자에게 실망감을 줄 수 있습니다.

    오늘도 본지 서울의소리는 단재 서거 76주기 기념식 취재를 위해 충청도 귀례리 까지 다녀왔습니다.
  • 단재 2012/02/21 [09:32] 수정 | 삭제
  • 묘청의 난을 인민에게 설파함이 온당하지!
  • 단재 2012/02/21 [09:31] 수정 | 삭제
  • 나는 평화운동을 말한 적이 없다. 위의 내용은 허구이다.
    독살로 인해 고종이 붕어하시자 고종과 연결되어있던 재외 국권회복운동가들은 1918년 12월(음) 대한독립선언(무오독립선언)을 천명한다. 당시 만주를 중심으로 구주, 미주까지 연결된 광범위한 조직을 형성하였던 국권회복운동가들은 무장항쟁으로 독립을 쟁취함을 선언하였다. 이후 일제치하에 놓였던 지역에서 2.8독립선언과 3.1독립만세운동이 진행되었다.
    1915년경부터 진행되었던 상해임시정부는 고종의 망명을 추진하였으나 일제와 을사오적등 친일파에 의해 고종독살사건이 발행하자 초대대통령으로 손병희선생을 내정 정부선포를 준비하며, 고종인산과정을 이용하여 천도교당을 기반으로 국내정세에 맞는 3.1독립운동을 준비, 전개하였다. 진행과정에서 손병희선생의 대통령취임이 불가하여지자 나라를 되찾거든 팔아먹겠다는 이승만이 간계를 부려 임시수반인 국무령에 취임하자 이를 탄핵하는 단재는 임시정부와 결별, 만주와 연해주, 블라디보스톡등지에서 활동을 재개한다.
신채호, 왕, 옥사, 추모, 독립, 항쟁, 일본 관련기사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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