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말 중에 “고쳐 쓸 물건은 따로 있다”란 말이 있다. 이 말은 쓰던 물건이 고장 나 도저히 쓸 수 없을 때 하는 말이지만, 보통 언행이 변하지 않은 사람이나 정치 집단을 비판할 때 많이 쓴다. 많은 기회를 주었지만 과거의 고질적 병폐를 반복할 때 흔히 이 말을 쓰기도 한다.
한편, 우리 말 중에는 “다 속여도 피는 속일 수 없다”란 말도 있다. 이 말은 지식이나 외모로 본성을 가리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란 뜻이다. 본성이 정의롭지 못한 사람은 언제고 그 품성이 드러나고 만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한 속담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5.18은 성역이 아니다, 라고 한 이병태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극우적 발언을 자주 한 이병태를 총리급인 규제합리화 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할 때도 여러 말이 많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병태가 드디어 일을 냈다. 이병태는 배재고 야구 선수들이 “스벅 가야지, 탱크데이!” 하고 소리친 것을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했다.
이병태는 그것도 모자라 “5.18은 성역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5.18이 민주화 운동이 아니라, 폭동이라는 수구들의 주장을 우회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전두환은 죽을 때까지 5.18 학살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폭동이라고 망언을 했다.
여야 합의로 제정된 5.18 특별법
민주 진보 진영에서 5.18은 성역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만 신군부에 맞서 싸워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낸 공로는 누구나 인정한다. 그래서 여야가 합의해 5.18 특별법도 제정한 것이다. 수구들도 인정한 5.18 민주화 운동을 이재명 정부의 고위급이 부정한 것은 충격적이다.
이병태는 배재고 학생들이 “스벅가자, 탱크데이!” 하고 외친 것은 표현의 자유라고 했다. 스타벅스의 이 마케팅은 정용진 회장까지 나서 사과했는데, 이재명 정부의 고위직이 이걸 표현의 자유라고 한 것은 가히 충격적이다. 몸에 밴 보수의 DNA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는 과거 세월호 참사도 비하하였다.
이병태 비호한 조선일보
조선일보는 6일자 정치면 <靑 '5·18발언' 경고…이병태 “입장 바뀔 일 없다”>에서 이 부위원장의 발언에 대해 “총리급의 '5·18 성역' 의견 논란”이라며 찬반 '논란' 내지 '정쟁'이 벌어지는 것처럼 다뤘다. 그런 조선일보에 묻자. 반헌법적인 혐오 발언과 정당한 의견도 구분하지 못하는가? 그렇다면 왜 유럽은 아직도 나치 전범을 찾아 처벌하고 있을까? 해방이 되어도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고 오히려 반민특위 구성을 방해하고 결국 해체한 이승만이 배재고(배재학당)를 졸업해서인가?
혐오 발언을 정당한 의견인 것처럼 대등하게 다룬 뒤 이를 여권 내 정쟁, 특히 전당대회를 앞두고 벌어지는 당권 경쟁의 한 쟁점으로 다루려는 조선일보의 꼼수를 누가 모르는가? 언론·출판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21조에는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명시되어 있다.
혐오 발언은 피해자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사회 공동체의 신뢰와 통합을 허무는 일
배재고에 대한 징계 수위의 경중을 놓고 생각이 다를 순 있지만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특정 지역·지역민의 피해 역사를 조롱하는 행동까지 '표현의 자유'를 이유로 보호해선 안 된다. 혐오 발언은 피해자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사회 공동체의 신뢰와 통합을 허무는 일이기 때문이다.
유럽인권재판소도 인종차별, 홀로코스트 부정, 특정 종교·집단에 대한 혐오 선동 같은 극단적 행태는 표현의 자유 보호 영역에서 배제한다. 그러면 유럽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미개국이란 말인가?
먼저 선처 호소에 광주시민들 허탈
사과와 책임이 먼저인데 선처 요구부터 나오는 모습에 광주 시민들은 허탈해 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상처가 충분히 치유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해 학생들의 미래만 강조되는 것은 균형을 잃은 접근이다. 교육은 책임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선처를 말하기 전에 피해 학생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타인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고 불의에 침묵하지 않으며 공동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교육 현장과 스포츠 현장은 혐오와 왜곡을 걸러내는 마지막 방파제여야 한다. 이번 사태가 한 학교의 사과로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 되묻는 계기가 돼야 한다.
국가폭력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해
이번 논란은 5·18을 둘러싼 표현의 자유 논쟁이 단순한 의견 표명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국가폭력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피해자 인격권, 공직자의 책임 문제와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헌법학자들은 표현의 자유가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만큼 보호돼야 하지만, 그것이 역사적 피해를 조롱하거나 관련자의 존엄을 침해하는 발언까지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현재 한국에는 극우 세력이 초중고까지 침범해 역사를 왜곡하고 피해자 가족들을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로 조롱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 희생된 학생들을 “오뎅”이라고 비하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는가? 자기 가족이 그렇게 죽었어도 그런 비하를 할 수 있을까?
스타벅스 사태나 배재고 야구부 사태는 빙산의 일각
스타벅스 사태나 배재고 야구부 사태는 빙산의 일각이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활동하고 있는 극우들은 이제 초중고까지 점령했다. 아이들은 의미도 모르고 오락을 즐기며 역사를 왜곡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중력절”, 이태원 참사를 “압력절” 운운하며 비하하고 있다.
10대들의 극우화를 막지 못하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혐오 발언과 가짜뉴스는 어설픈 관용이나 국민통합으론 해결될 수 없다. 역사를 왜곡하고 역사적 아픔을 겪고 있는 유족들에게 혐오 표현을 사용하는 자들에게 관용은 사치다. 다 변해도 이땅의 수구들은 변하지 않는다. 배재고에 화한을 보내 응원한 의원도 있지 않은가? 어찌 그들과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있겠는가? <저작권자 ⓒ 서울의 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