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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발품일기(12) -다시 일어서는 풀, 그가 미덥다

(이학영 민주통합당 시민후보 경선 연설을 듣고 나서)

이명옥 | 기사입력 2012/01/12 [19:02]

이명옥의 발품일기(12) -다시 일어서는 풀, 그가 미덥다

(이학영 민주통합당 시민후보 경선 연설을 듣고 나서)

이명옥 | 입력 : 2012/01/12 [19:02]

▲ 연설 중인 이학영 후보     © 이명옥
 
2012년 1월 11일 오후 2시 장충체육관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경선 이후 또 한 번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민주통합당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정을 위한 합동연설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후보의 연설을 듣거나 지지를 호소하는 자리에 가기 시작 한 것은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왔던 한명숙 전 총리 때문이었다. 그때는 정말 대다수의 시민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썩은 정치판을  물갈이를 해보자는 분노가 충천했었다.
 
이후 박원순 서울 시장의 유세에 서너 차례 가봤고 경선 자리에서 박원순 후보가 승리하는 통쾌한 쾌거를  맛봤다.  이번 '민주통합당' 합동 연설은  후보가  아홉 명이나 되고 각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준비한 다양한 구호와 포포먼스로 입구부터  상당히 소란스러웠다.
 

▲ 기호 2번 이학영 시민후보 이학영 이번에는 바꾸자!     © 이명옥
 
나는 시민후보인 시민단체 출신 이학영 후보 지지자이다.  같은 색의 목도리를 맞춰 두르고 다양한 피켓과 띠를 준비한 다른 후보진영과 달리 이학영 후보진영에는 기호 2번 이학영 후보의 얼굴사진이 들어 간 판넬만 준비되어 있고 두세 사람이 뻘쭘하게 서 있었다.

 대학생 젊은이들로 구성된 이인영 후보 측 지지자들은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구호가 적힌 빨간 천을 카드 섹션을 하듯 일제히 들어올리며 구호를 열창한다. 잘 훈련된 유세단과 열혈 팬클럽 멤버들이 함께하는 다른 후보들과는 전혀 다른  이학영 후보 진영의 썰렁한 풍경이 을씨년스럽다.
 
나는 사실 연설을 들어보려고 갔는데  하도 답답해 입구에 같이 서서 “아 뭐라고 구호라도 좀 외쳐보세요”라며 채근을 했지만 중년 남자 두 어 명은 그저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그냥 판넬만 들고 뻘쭘하게 서 있다. 그 속 터지는 풍경을 어찌 말로 설명을 할 수 있겠는가.

할수없이  “기호 2번 이학영 시민후보 이학영 이번에는 바꾸자!”라는 구호를  급하게 만들어 몇 번 외치다가 행사가 진행되는 채육관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도 역시 다른 후보들은 당원들과 지지자들이 같은 색의 목도리로 드레스 코드를 맞추어 자리를  가득 채우고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드디어  후보  9 명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1번 한명숙 후보가 첫 연설자로 나서길래  번호대로 하는 줄 알았는데 제비뽑기를 해서 나온 순서대로 연설을 한다고 했다. 후보의 절반이 넘는 다섯 명의 연설이 끝났는데도 이학영 후보의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8번 째가  되어서야 이학영 후보 차례가 되었다.

이미 7명이 가지가지 공약과 더불어 사자후를 토한 터라 더 이상 할 말이 없어보였다. 그런데  이학영 후보가 올라와 한 이야기는 여느 후보들과는 아주 달랐다. 다른 후보들은 자신들이 왜 당대표가 돼야하는지 얼마나 능력이 출중한지를 줄줄 읊어대고 당대표가 되기만 한다면 정말 많은 부분에서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을 것 같은 달콤한 약속들을 수도 없이 쏟아냈었다.

그런데  이학영 후보는 76년 감옥살이가 끝나고 밥을 벌어먹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던 시절 이야기부터 꺼냈다. 그는 일당 벌이를 해서 서울역 대우 빌딩 뒤에 주르륵 있었다는 쪽방촌에서 잠자리를 해결했던 과거사를 들려주었다. 그것은 동정을 구하는 것도 나는 이렇게 어렵고 힘들게 민주화의 길을 걸어왔다는 자랑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시대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감옥에서 얻었다는 천식으로 인해 큰소리를 지르며 사자후를 토해내기는커녕 그저 가족들 둘러앉혀놓고 소근대듯 그가 살아 온 지난한 삶, 아니 우리의 시대의 아픔을 솔직한 언어로  펼쳐보이고 있었다. 그리곤  조용한 음성으로 김수영 시인의 ⌜풀⌟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 이학영 후보는 소탈함과 솔직함으로 청중에게 말을 건넸다.     © 이명옥

풀/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장남, 문학청년으로 평범한 교사를 꿈꾸었던 이학영은 등단 시인이기도 하다. 사슴같은 이, 혹은 학같은 이로 불리는 조용한 성품의 그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시대의 폭풍우로 휘말린 <민청학련> 사건 이후,  불의와 독재의 실상에 반기를 들었던 <남민전> 사건을 끝으로  그 본래의 성품대로 시민운동가로 생명과 명화와 생태를 지켜내는 지킴이로  풀처럼 낮은 자리에서 풀뿌리의 삶을 살았다.
 
출근을 해서 제일 먼저 대걸레부터 잡았다던 그를 기억하는 지방의 활동가들는 여전히 그를 그리워한다고 한다. 그런 그의 삶의 행적은 그가 어떤 사람인지 단적으로 말해준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조선일보가 강도라고 몰아붙였던  이학영이 연루된 <남민전 사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응원의 메세지를 날렸다. 

 “나보다 훨씬 용기, 진실, 개혁성을 갖춘 분이죠 제가 시민운동이라고 하는 동업자이며 늘 마음속에 모시고 존경하는 이유는 바른 정신과 바른 실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이학영 총장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이학영 총장님과 함께 하겠습니다”

‘‘남민전’(남조선민족해방전선) ‘ 사건은 인혁당 사건과 더불어 70년대 최대 공안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혁영 후보는 그사건으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5년의 형을 받고 감옥 생활을 했다. 그러나 2006년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에서 남민전 관련자 29명을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인정했고 이학영 후보는 김남주 시인 등 과 함께 민주화 운동 관련자로 보상의 대상이 되면서 명예회복을 했다. 

 함세웅 신부, 임수경 이부영 등  144명이  참여해 발표한 ‘시민이 바라는 정치혁신, 이학영이어야 가능 합니다’라는 성명은  이학영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그간 민주통합당의 창당 과정은 시민들이 바라는 정치혁신을 구체화하지도 못했고, 민주진보세력의 통합 역시 전체를 아우르지 못하여 절반의 성공에 머물렀다.강력한 정당혁신·인적쇄신 없이는 결코 총선승리, 정권교체의 대업을 달성할 수 없다

이학영은 민주화운동, 풀뿌리주민운동, 생명평화운동, 정치개혁운동에 묵묵히 헌신해온 이 시대의 진정한 일꾼이며 시민사회운동의 전국적 지도자이기에, 시민정치시대를 본격적으로 열어젖힐 적임자라고 생각한다‘

이학영 후보는 김수영의 시를 낭독 한 뒤 말했다.

“나는 오랫동안 풀뿌리로 풀뿌리 운동을 하면서 풀뿌리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일어서려 합니다. 우리는 모두 풀입니다. 이제 3천 500만 풀들인 우리 모두  함께 일어섭시다.”

어색한  몸짓으로 “함께 일서서자 ” 며 시민 정치를 말하는 그의 어설픈 연설이,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와 유창한 언변으로 거침없이 공약을 쏟아내는  연설보다 훨씬 미더웄던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그대들은 아는가.
 
눈물에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 배고품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 가난한 서민의 아픔을 보듬어 안고 노동문제를 함께 고민하며 한미FTA라는 쓰나미가 삼켜버릴 서민들의 삶을 지켜내겠다’ 는 그의 약속이 미더운 것은 그는 말이 아니라 삶으로 그 모든 것. 즉 서민 삶의 애환과 아픔을 체험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시 '세계가 만일 하니의 집안이라면'이라는  시에는 그의 세계관,  그의 인간에 대한 사랑,  그의 생명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그가 미더운 또 하나의 이유를  덧붙이자면  그는 시인의 감성을 지닌. 햇살처럼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시인인 그로부터 시작될 '시민혁명'은  북풍이 몰아치는 것 같은   피의 혁명이 아닌,   햇살처럼 부드러운 혁명일 것이다.  그가 불러일으킬  풀뿌리 혁명  아래로부터의  '부드러운 혁명'을 통해  확실한  변화와 개혁의   새바람이 일어날 것을  기대해 본다.
 




세계가 만약 하나의 집안이라면/이학영


세계가 하나의 집안이라면
난 하늘같은 솥을 하나 걸겠어
한쪽 발은 히말라야 봉우리에 걸치고
다른 한쪽 발은 안데스 산줄기에 걸치고
그 커다란 솥단지에
산봉우리처럼 가득 하얀 쌀을 들이붓고
온 세상의 아이들더러
마른 나뭇가지를 주워오라고 해서
따뜻한 불을 지펴 밥을 지으며
옛날이야기를 해주고 싶어
얘들아
만약 우리들의 아버지가 하나라면
이 밥을 지어서
누구는 주고 누구는 굶주리게 하겠니?
누구는 따뜻한 방에 재우고
누구는 길바닥이나 들판에서 추위에 떨게 하겠니?
그 이야기를 들으며
하얀 쌀밥으로 배를 채운 세상의 모든 아이둘이
어느덧 쌔근쌔근 잠이 들 테지
하나의 집, 하나의 아버지를 꿈꾸며
내일도 어김없이 주어질
따뜻한 쌀밥을 꿈꾸며
안심하고 깊은 잠에 떨어질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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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장애 사회문제에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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