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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에 최전선 맞섰던 고 류한림.. 그는 누구인가

안티 이명박 운영자 장례에 정동영 의원 등 각계인사 조문 줄이어..

김복철 | 기사입력 2012/03/26 [11:15]

이명박에 최전선 맞섰던 고 류한림.. 그는 누구인가

안티 이명박 운영자 장례에 정동영 의원 등 각계인사 조문 줄이어..

김복철 | 입력 : 2012/03/26 [11:15]

 
안티 이명박 카페지기 류한림(닉네임 윤활유)씨가 2012년 3월 24일 새벽 2시에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48세로 젊은 나이로 사인은 간암말기와 그 합병증으로 경찰병원에서 장례를 치뤘다.
 
안티 이명박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2007년 12월19일 창립된 최고(最古)의 까페로 회원수 또한 12만3천여명 (2012년 3월 25일 기준)으로 국내 최대 회원수를 기록하고 있다. 
 

▲  안티 이명박 까페지기 故 류한림 씨 빈소에 놓여진 안티 이명박 깃발         © 서울의소리



 
 
다음까페 안티 이명박(안티엠비)은 2008년 미국 소고기 반대 집회 때 가장 적극적으로 촛불을 들었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산에 올라 촛불을 보고 아침이슬을 들으며 반성했다'라는 말을 하며 사죄했다.
 
운영자 류씨는 기륭전자 투쟁때 한쪽 눈을 실명한 것을 비롯 굴곡진 투쟁의 인생을 살아왔다. 류씨는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탐욕을 위해 자신의 욕망에 장애물이 되는 존재가 누가되었건 희생시키는 기득권층'에 투쟁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류씨가 참여한 기륭전자 투쟁은 2005년 7월 비정규직인 파견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했고, 사측이 이들 중 일부를 해고하면서 시작됐다.
 
노조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단식, 고공농성 등을 벌였지만 사측은 경찰을 투입하고 사태를 악화시켜 교섭은 번번이 실패하였고 급기야 비정규직 투쟁과 인권을 보장하라며 맞서던 노조와 전경의 대치가 부상사고까지 촉발시켰다. 
 
해고당할 수 없다는 노동자들은 결국 버텨내어 2010년 1월 투쟁 1,895일 만에 사측으로부터 '비정규직 10명 정규직 고용'이라는 성과를 얻어내게 되었다.

CBS는 이 기륭전자 투쟁을 두고 '비정규직 문제 심각성을 우리 사회에 여실히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논평을 했다.

▲  농성중 전경에 맞아 한쪽눈을 실명한 류한림(윤활유)씨.      © 레디앙


 
 
 
 
 
 
 
 
 
 
 
 
 
 
 
 
 
 
 
 
 
그 와중 류한림씨는 전경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하는 등 개인적으로 상당히 고통과 고충을 안게 되었다. 이후 류한림씨는 투쟁의 일선에서 물러나 생계를 위해 가족이 운영하는 조경업을 도왔으나 지난 2011년 11월 간암 4기 선고를 받고 투병해왔다.
 
2011년 11월 간암 4기 진단을 받고 간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합병증 등으로 올 3월 24일 오전 2시 경 유명을 달리했다.
 
마지막 가는 길.. 류씨, 이명박을 심판해 달라
고인 빈소 정동영, 이종걸 의원 등 각계 인사 화환 및 조문 행렬
 
빈소는 잠실 경찰병원 8호실에 차려졌으며 민주통합당 박지원 최고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이종걸 의원, 까페 안티 이명박, 인권 변호사 한웅 등 수많은 인사들의 근조화환이 도착였으며, 수많은 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
 

 
 

▲ 고 유한림씨의 유족들을 위로하는 정동영 의원         © 서울의소리



 
 
사망 전일에는 한미FTA반대에 목소리를 높이고 이명박 정권 심판 촛불 등에 함께 참석했던 인연으로 천정배 의원이 문병을 오기도 하였으며, 3일장 중에는 평소 고인의 민주주의 정신을 높이 산 정동영 민주당 의원이 조문을 오기도 하였다.
 

▲   장례식장을 가득 메운 애도 인원들     ©서울의소리

 
 고인은 26일(월) 오전 8시에 이루어졌으며 장지는 모란공원 민주민족열사 묘역에서 정해져 그곳에서 하관식이 당일 오후 2시 이루어졌다.

추모객들은 '남의 억울한 사연, 기득권자들이 없는 이들의 권리와 인권마저 부수고 자신의 부를 쫒는 세상 너무 안타깝다'며 '40대의 안타까운 나이 이렇게 아프게 가신 님의 뜻을 쫒아 이명박 심판에 더욱 매진하겠다'며 안타까운 추모의 정과 안티 이명박에 평생을 헌신했던 고인의 뜻을 기렸다.

 

아내 강경자 씨는 "이명박에 맞서다 남편은 결국 젊은 나이 병을 얻고 우리 가족을 떠났다. 그러나 나는 내 남편의 뜻과 그 마음 잊지 않을 것이다. 사랑했고 또한 죽어서도 사랑할 내 남편이여. 내 당신의 그 뜻을 잊지 않을 것이니 편안히 가요." 라며 눈시울 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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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같이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때까지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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